[평신도 신학강좌] 교회는 무엇인가
입력 2010-10-25 17:51
(16) 한국 가톨릭교회의 영광
기독교라고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구주로 믿는 종교이다. 따라서 거기서 나온 교단들은 다 기독교라는 이름을 써야만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 묘한 것은 프로테스탄트 곧 개신교만이 기독교 혹은 신교라는 이름을 쓰고, 구교는 로마 가톨릭교회 혹은 천주교라고 부른다. 희랍정교회 역시 기독교라는 말 대신에 그렇게 부르고 있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우리나라에서 그 명칭이 천주교회이다. 그것은 로마 가톨릭교회가 중국에 선교하면서 중국 상황에 맞게 토착화하려는 과정에서 적용한 이름으로 보인다.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사람인 그리스도를 이해시키는 일이 중국에서나 한국에서 쉽지 않았다. 마테오 리치라는 선교사가 ‘천주실의’를 간행할 때 천주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었다. 천주교라고 하는 이름은 중국과 한국에서만 쓰이고 있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16세기 초 종교개혁에 대항하여 예수회라고 하는 것을 조직해서 그 신앙의 정통성을 주장하기 위하여 해외에 무수한 선교사들을 파송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단한 인물만을 파송하고 있었다. 중국에 왔던 마테오 리치나 아담 샬 같은 이는 그들 없이는 서구문명이 휘청거릴 정도의 탁월한 학자 선교사들이었다. 중국을 거쳐 일본에 간 사비에르는 예수회를 창립한 당대 가장 고명한 신학자였다.
한국 천주교회는 100여년에 걸친 박해에 수많은 순교자를 내면서 이겨낸 영광의 교회이다. 그 때문에 세계 역사가들이 로마제국에서의 기독교 순교에 버금하는 눈부신 역사라고 칭송하고 있는 그런 교회이다. 그런데 그 역사는 끝없는 로맨스로 차 있는 대서사시이다. 18세기 중엽 이미 강원도 산간지역에까지 복음이 전파되고 있었다. 그것이 조정에 알려진 것이 천주교가 정식으로 우리나리에 들어온 1785년에 50년 앞선 일이었다. 누가 어떻게 전파한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여러 차례의 혹독한 박해를 겪으면서 마침내 로마 교황청에서 1831년 9월 9일 조선교구를 북경교구에서 독립시킨다. 천주교가 들어온 지 60년가량 지났을 때의 일이다. 이것은 한국 역사에서는 하늘 높이 솟는 기념비적 사건이다. 한국은 수천 년 내내 중국의 변방에서 그들의 오만에 시달려왔다. 그들은 한국을 그들 종속국으로 대하고 있었다. 왕도 그들의 결재를 얻고서야 즉위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 천주교회를 중국의 북경교구에서 독립시킨 것이다. 이것은 비록 종교적인 차원에서 생긴 일이기는 하지만, 한국이 중국에서 독립된 역사상 최초의 사건이다. 한국이 중국에서 독립하고 있다는 것을 최초로 보여준 것은 천주교였다.
그래서 그랬다. 중국의 천주교회는 이 조치에 대들었다. 로마 교황청에 반박서 보내기를 서슴지 않았고, 최초의 주교 입국을 한사코 저지하였다. 그래서 사실 제1대 한국교구장으로 임명된 신부는 압록강을 건너오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던 것이다. 우리는 지금 그런 중국을 옆에 놓고 산다.
민경배 백석대학교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