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이라크전 기밀 39만건 폭로… 위키리크스 “대학살 현장 생생히 담겨 있다”
입력 2010-10-24 22:31
2003년 3월부터 2009년까지 이라크전에서 숨진 공식 사망자가 10만9000명을 넘고 이 가운데 63%인 6만6812명이 민간인인 것으로 밝혀졌다.
인터넷 기밀폭로 사이트 위키리크스(wikileaks.org)는 23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 같은 내용이 담긴 미국 국방부의 이라크전 기밀 서류 39만1832건을 공개했다. 위키리크스 운영자인 줄리언 어샌지는 “지금껏 알려지지 않은 전쟁 현장의 대학살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고 밝혔다.
◇“전쟁 실상 은폐”=어샌지는 이번에 밝혀진 내용 중 민간인 사망자 1만5000여명은 지금까지 공개된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미 국방부가 전쟁의 실상을 숨겨왔다는 것이다. 반전단체 ‘이라크보디카운트닷컴’은 “(국방부 자료 외) 새로 밝혀진 사망자를 합산하면 총 사망자 수는 12만2000명을 넘는다”고 지적했다.
서류에는 전쟁의 참혹한 실상이 자세히 기록돼 있었다. 2005년 8월 31일 수도 바그다드의 한 다리 위에서는 공포에 휩싸인 군중이 몰려들면서 950명이 숨졌고, 2007년 8월 14일 시리아 접경 지역에서 트럭 폭탄테러로 500명 이상이 사망했다.
특히 검문소에서는 미군의 수신호를 알아보지 못하거나 단순히 겁을 먹고 검문에 응하지 않은 민간인을 상대로 총을 난사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 2005년 6월 14일 라마디 검문소에서는 미 해병이 정지신호를 무시한 차량에 총격을 가해 2명의 어린이를 포함한 7명의 민간인이 숨졌다.
이라크 군경이 자행한 고문과 학대를 미국이 눈감은 사례도 다수 있었다. 구타와 불 고문, 채찍질, 전기 고문과 관련된 보고는 수백건에 이르렀다. 이라크 관리들이 수감자의 손가락을 자르거나 몸에 산성용액을 부었다는 의혹도 있었다. 미군은 이런 행태를 상관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았고, 보고하더라도 “조사는 필요 없다”며 축소하기에 급급했다. 어샌지는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최소 40건의 불법 살상에 대한 충분한 증거 자료가 담겨 있다”고 주장했다. 위키리크스는 문건 입수 경로는 밝히지 않았다.
◇논란 확산=제프 모렐 미 국방부 대변인은 “지난 7월부터 문건을 재검토해 왔지만 전쟁 범죄 증거는 없었다”고 밝혔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미국과 동맹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기밀 공개에 반대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라크의 누리알 말리키 총리실은 “합법적인 수사 활동이었다”며 불법 고문 의혹을 일축했다. 인권부는 “이미 다 알려진 내용”이라고 밝혔다.
반면 인권감시(HRW)나 국제사면위 등 인권단체들은 새로 폭로된 내용에 대한 조사를 촉구했다. 사면위는 “미국이 국제법을 위반하고 있다는 우려가 더 커졌다”며 “이라크 정부의 고문과 불법을 눈감은 미국 관료가 얼마나 되는지 밝혀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유엔 고문 특별보고관인 만프레드 노박은 23일 영국 BBC방송에 출연해 “위키리크스의 폭로가 고문 방지 협약 위반 증거가 된다면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이를 조사할 법적·도덕적 의무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