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 경주회의 환율 타협] 환율전쟁 정전 모드로… 일부 합의 모호해 불씨 잠복

입력 2010-10-24 22:15


이번 환율 합의는 예상을 뛰어넘는 결과물이었다. 이해당사국 간 현격한 입장 차이로 결론을 내지 못할 것이라는 일부 외신의 전망과 달리 ‘경상수지 목표제’와 ‘시장결정적 환율제도 이행’ 등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다. 폐막 기자회견에 나선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환율논쟁 종식”을 선포했을 정도다. 그러나 합의내용 자체가 모호한 데다 이행을 담보할 강제력 있는 수단은 담기지 않아 ‘정전 선언’일 뿐 환율전쟁 불씨는 여전하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환율해법 절충 ‘성공’…모호한 표현은 단점=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간 공동선언문은 첫 페이지부터 환율과 무역불균형 해소 관련 내용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자국 화폐가치를 경쟁적으로 끌어내리려는 회원국의 환율갈등을 의식한 ‘시장 결정적 환율제도로의 이행’과 ‘경쟁적인 평가절하 자제’, ‘경상수지 목표제’ 관련 표현이 그것이다. 경상수지 목표제란 각국이 경상수지 흑자나 적자 규모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일정 비율로 제한하자는 것이다. 한국의 제안에 미국이 힘을 실어 주면서 전면에 부상했다. 우리 측이 당초 제안한 경상수지 흑자나 적자폭을 GDP 대비 4%로 제한하자는 방안을 티머시 가이트너 미 재무장관은 이번 경주회의 개막 전 서한에 담아 G20 회원국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문장을 자세히 뜯어보면 미국의 원안과 달리 상당한 수준의 양보가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공동선언문에는 ‘우리가 합의할 예시적인(indicative) 가이드라인에 의거해 큰 폭의 불균형이 지속된다고 평가될 경우’라고 돼 있다. 흑자나 적자폭으로 4%를 못 박지 않고, ‘큰 폭의 불균형’이라는 다소 모호한 표현으로 절충한 셈이다. 원유 수출로 지속적인 흑자가 예상되는 사우디아라비아 등 대규모 자원생산국을 포함해 국가적·지역적 환경을 고려할 필요성을 인정한다는 단서도 달았다.

G20 정상회의 준비위원회 관계자는 “어느 한 나라를 코너에 몰아서는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데 미국도 공감했다”며 “경상수지 변동 폭은 넓게 두고, 그 목표(과도한 변동폭 감소)를 달성하기 위해 각 나라가 자체적으로 다양한 정책을 펼 수 있도록 합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열린 타결’ vs ‘어설픈 봉합’ 논란=무역불균형 해소방안으로 경상수지 목표제가 공동선언문에 포함되긴 했지만 실제 시행되려면 국제통화기금(IMF)의 예시적인 가이드라인이 정해져야 한다. 무역불균형을 판단하는 잣대는 추후 논의를 거쳐 정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IMF는 이번 합의에 따라 앞으로 회원국별 대외 지속가능성의 진척상황과 재정 통화 금융 구조개혁 환율 기타정책의 일관성에 대해 평가하게 된다.

정부 관계자는 “4%로 설정하는 것보다 훨씬 더 부드럽고, 구속력이 없는 대신 자발적인 의미가 있는 것”이라며 “회원국 간 상호감시로 해결해 나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지키지 않으면 그만인 수사적 표현으로는 향후 환율분쟁은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 이번 공동선언문을 두고 환율전쟁 종전이 아닌 정전에 그쳤다는 비난이 제기되는 이유다.

G20 준비위 관계자는 “수치(4%)를 집어넣지 않은 것만 보고 실패한 것이라 판단할 수 있겠지만 수치를 집어넣는 것도 장단점이 있다”며 “이 정도 합의를 본 것만으로도 상당한 진보와 진전이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자평했다.

경주=정동권 기자 danch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