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이상명] 반구대 본질 외면하는 학술잔치
입력 2010-10-24 17:55
동북아역사재단이 26, 27일 ‘한국 암각화 발견 40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한다. 발표주제를 들여다보니 딱하기 이를 데 없다. 반구대 발견을 기념한다면서 우리 암각화 대신 몽골, 러시아 등 외국사례가 중심에 서 있다. 반구대 암각화를 중심에 놓은 외국인의 논문이 한 편도 없다. 40주년 기념의 주인은 당연히 반구대이다. 반구대가 어떤 바위그림인지, 그 의미와 가치를 외국인의 시각에서 발표케 하여 세계문화유산으로서의 자격을 규명케 하는 자리여야 한다.
그런데도 혈세로 남의 나라 암각화를 소개하는 행사로 변질되었다. 빛 좋은 개살구이다. 아버지 환갑잔치에 외국 손님들이 자기 집안 소개하느라 시간을 다 써버리는 꼴이다. 주인공이 엑스트라로 나오는 영화나 다를 바 없다. 한국을 대표하는 바위그림 전문가들도 뺐다. 이런 회의는 한국문화를 잘못된 방향으로 가게 한다.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올라있는 만큼 세계시민에게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있음을 규명하는 국제학술회의로 기획했어야 했다. 고려불화 국제학술대회에 중국불화가 중심에 선다면 말이 되겠는가.
동북아재단 정체성 뭔가
동북아역사재단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묻지 않을 수 없다. 발표를 보면 한국역사를 방기하고 북방문화를 부지런히 소개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한국 암각화가 독자성이 있다는 학술 견해도 제출되어 있는데 은연중에 북방아시아 암각화와의 친연성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우리 것을 북방에 예속시키는 데 앞장서고 있다.
그동안 다른 나라 암각화 도록은 부지런히 발간하면서 국내 바위그림 도록은 한 권도 발행하지 않았다. 최초 보고서가 나온 지 40년이 지났다. 그런데 최초 보고자가 40년 동안 논문 한 편 안 쓰고도 이번 국제학술대회의 기조 강연자로 나선다. 그의 회고와 전망은 10년 전에 들었다.
지금 더 시급한 일은 먼저 반구대를 물속에서 건져내는 일이다. 훼손된 원형을 살리고 보존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지금 동북아역사재단은 1층도 안 올렸으면서 10층을 올리려고 한다. 항몽투쟁의 정신적 지주였던 팔만대장경이 물에 잠겼다고 해도 과연 이렇게 하겠는가. 이제 이런 겉치레 행사는 그만둘 때가 됐다. 반구대를 물속에 처박아놓고 어떻게 국제 학술잔치를 할 수 있는가. 더욱이 국가의 녹을 받는 자들이 토론자로 나서고 있다.
나는 건설공학도로 석재나 암석, 골재의 물성을 잘 안다. 바위는 구멍이 쑹쑹 뚫린 다공성 물질이다. 수세미 같은 구조이다. 머드스톤이라는 세일구조의 암석이 물에 잠겨있으면 F1의 가속페달을 밟은 꼴이다. 공주대의 2010년 조사연구결과에 의하면 침수와 건조로 인한 물리적 훼손부위가 23.8%나 진행되었다. 즉시 사연댐의 수위를 낮추는 수문을 설치해야 한다.
내년 예산 없어 침수 장기화
그런데 올해도 문화재청이 신청한 이 예산이 울산시 반대로 배정되지 못하고 있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는 프로젝트에도 역행하는 일이다. 그동안 퇴행적 토목행정을 일삼은 울산시에 더 이상 맡겨둘 수 없다. 문화재청이 관리권을 직접 행사해야 한다. 문화재연구소는 2004년 반구대 3D 영상채록 작업을 하고서 훼손을 적시하는 보고서도 발간하지 않고 있다. 문화재청과 울산시는 서로 훼손의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우리 것도 제대로 모시지 못하면서 해외 사례를 모셔오는 난센스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런 일들은 결국 반구대를 아직도 물과의 사투를 벌이게 하는 일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 암각화 발견 40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 기획과 진행과정을 보면서 물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반구대 바위그림에 미안했다. 우리나라 미술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해준 그 바위그림의 화가들에게 마음 깊이 용서를 빌었다.
이상명(연세대21세기건설硏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