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애옥] 친구 같은 동생 나리에게

입력 2010-10-24 17:53


오늘도 맨하튼 거리를 오갈 나리야, 선물 잘 받았다. 뉴욕에서 온 물건인데 한지로 겹겹이 싸고 정성껏 펜으로 쓴 카드를 보고 사랑은 최고로 예우하는 것이라는 말을 다시 한 번 실감하며 뭉클하였다. 물론 부탁하는 것이 미안하여 가장 가벼운 선물을 고르느라 스카프를 선택하였을 네 마음도 전달된다.

별로 잘 지내지 못하였던 미국생활에서도 네가 매일 준비한 사과 하나를 나누어 먹으며 루트 원 도로를 운전하여 같이 학교 다녔던 그 시간이 즐거운 추억으로 남는구나. 그때부터 아침에 꼭 사과 반개 먹는 습관이 생겨 애플 중독자라는 말까지 듣고 있지. 서로 위로해주고 지지해주고 축복해주며 지냈던 몇 개월 동안 우리는 차 안에서 천국방언을 하였던 것 같다.

엊그제 완벽한 가을 날씨가 아까워 무작정 근무하는 대학 근처 칠장사에 갔더랬다. 그리고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높고 푸른 가을하늘이 너무 아름다워 눈물이 핑 돌았다. 입구에 서있는 단풍나무는 마치 빨간 꽃나무 같아서 기어이 작은 가지 하나를 꺾고 말았다. 알고 저지른 죄이지만 무조건적으로 붉은 가슴이 되는 것을 난들 어쩌겠니. 북적대는 세상으로 내려오기 싫어 보름달이 뜰 때까지 몇 시간을 붙박이처럼 그 자리에 머물다 왔단다.

뉴요커로 열심히 살아내고 있는 나리야. 세월이 흘러도 향기로운 인연을 잘 가꾸어 나가자. 나이는 나보다 한참 어리지만 늘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겸손한 네 삶의 모습에서 많이 배운다. 그러나 때로는 안쓰러운 마음이 들 때도 있다. 왜냐고 묻고 싶니? 혹시 가슴 안에 숯검뎅이 한 바구니 안고 살면서도 타인 중심으로 배려하고 인내하고 절제하며 그렇게만 사는 착한여자 콤플렉스가 있는 것은 아닌가? 잠깐 그런 생각까지 해보았음을 고백한다. 나도 한때는 착해야 된다는 강박관념으로 별로 행복하지 않게 지낸 적이 있거든.

혹시 그렇다면 나리야. 언니의 하나밖에 없는 동생으로, 친구로, 그리고 직장동료로 그렇게만 사는 네가 아니라 자연인 나리로 살라고 말해주고 싶어. 화가 나면 소리도 지르고 화 에너지를 동원하면서 말이야. 너무 이타적으로만 살지 말자. 나를 사랑해야 남도 사랑할 수 있다는 말도 있잖니.

사실을 바꿀 수 없으면 생각을 바꿔야해. 멀리 떨어져 있어 우리가 함께하지 못한 시간을 안타까워하는 대신 너를 소중한 친구로 여기며 우정을 지속적으로 쌓아갈 거야. 네가 어떻게 생각할까, 부담스러워하지 않을까, 그렇게 마음 쓰는 대신에 네게 한 줄이라도 메일을 보내고 네 목소리를 한 번이라도 더 듣는 편을 택하고 싶다. 괜찮지?

십자수 놓듯 성실하게 삶의 무늬를 그려가고 있는 나리야. 우리는 여전히 산적한 문제를 해결해가며 살아야겠지? 산 속에서 홀로 닦는 도보다 삶 속에서 질척거리며 깨닫는 도가 더 값지지 않겠니. 너랑 같이 만들어 먹었던 아보카도 넣은 캘리포니아롤을 먹고 싶구나. 스트레스를 먹는 것으로 푸는 나는 말도 아닌데 살이 찌고 있어 걱정이지만 너는 남은 가을 몽땅 다 가지거라!

김애옥(동아방송예술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