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표 여류작가 이성자·윤영자·천경자의 ‘아름다운 대화’ 展
입력 2010-10-24 17:26
추구하는 세계 달라도 작품 열정만은 ‘닮은꼴’
이성자(2009년 작고) 윤영자(86) 천경자(86). 1950년대 6·25전쟁과 60∼70년대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도 불구하고 작업에 열정을 쏟으며 국내외 미술계에 큰 획을 그은 여류 작가들이다. 공교롭게도 3명 모두 이름이 ‘자’로 끝난다.
서울 남대문로 롯데백화점 본점 에비뉴엘 9층 롯데갤러리에서 다음달 15일까지 이들 세 작가의 작품을 모은 전시 ‘아름다운 대화’가 열린다.
‘한국의 위대한 여성작가 3인전’이라는 부제가 붙은 전시에는 50년대부터 최근까지 3명 작가의 60년간 작품세계를 망라한 45점이 전시된다. 프랑스에서 활동한 이성자 화백은 동양적인 것과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과 작업으로 김환기 이응로 등과 함께 한국미술을 세계에 알렸다. 하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저평가된 부분이 적지 않다.
이 화백의 작품에서는 기호체계와 같은 상징물이 자주 등장한다. 동양정신에서 발현한 추상적인 상징물은 삶과 죽음의 인생 여정을 의미한다. 이런 화면은 프랑스 평단의 찬사를 이끌어냈으며, 2001년 프랑스 정부가 수여하는 예술문화공로훈장을 받았다. 이번 전시에서는 우주와 근원을 고민했던 작가의 독특한 시각을 시대별로 살펴볼 수 있는 15점이 출품된다.
홍익대 미술학부 최초의 여성 졸업생이면서 목원대학 미술학부를 창설하고 여성미술 발전을 위해 석주문화재단을 만든 윤영자 화백은 조각 작품에서도 여인상과 모자상 등 여인을 주제로 택했다. ‘여류조각의 선두주자’로 불리는 그의 작품세계는 인체의 볼륨을 생명력과 리듬감이 살아 있는 곡선의 미학으로 풀어냈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브론즈 혹은 금속의 소재는 깔끔한 형태 처리를 통해 날렵한 공간성을 제시하고, 대리석의 질감에서 느껴지는 따스함은 ‘생명’ ‘사랑’ ‘모정’ 등 주제의식을 잘 드러낸다. 일관된 주제로 본질을 추구하는 작가의 음성이 작품 속에 녹아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특별히 작가 자신의 소장품으로 일반적으로는 보기 힘들었던 작품 15점을 소개한다.
미국에서 체류하며 병마와 싸우고 있는 천경자 화백의 작품은 몽환적이며 환상적이다. 해외여행 스케치 전시를 열 때 “나는 나의 슬픈 눈만을 내놓은 채 사막을 달리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자신의 꿈과 환상, 내면의 은밀한 욕망이 그림에 투영되어 있다. 그의 ‘미인도’에서 보듯 여인의 수심에 찬 눈망울에는 인생의 허허로움과 낭만의 아쉬움이 잔뜩 묻어난다.
화려한 색채와 현대적 구성미가 돋보이는 그의 대작 ‘정원’ 등 13점이 출품된다. 98년 한국을 떠난 지 12년이 지났지만 작업에 열정을 쏟는 그의 체취가 느껴진다. “나는 미완성의 작품, 미완성의 인생이라는 말을 즐겨 쓴다. 나는 꿈을 향해 부지런히 그림을 그리며 현실을 거짓 없이 살았다. 꿈과 사랑을 추구하는 것이 곧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기에 나는 불행하지 않다.”(02-726-4428)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