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률 50%… ‘難姙 정복’ 멀지않다
입력 2010-10-24 17:28
‘시험관 아기’ 시술 어디까지 왔나
“지난 12일이 국내 첫 시험관 아기로 태어난 쌍둥이 남매의 만 스물 다섯번째 생일이었어요. 둘 다 무탈하게 자라서 동생은 군대를 갔다 온 뒤 최근 대기업 계열사에 취직했고, 누나는 학교 선생님으로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1985년 우리나라 최초로 체외수정 시술(IVF)을 성공시켰던 장윤석(79) 서울대 의대 산부인과 명예 교수는 25년 전 그의 손으로 받아냈던 아이들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은퇴 뒤 현재는 난임(難姙) 치료 전문 마리아병원 명예원장으로 있는 장 명예교수는 24일 “최근까지도 쌍둥이 남매와 연락이 닿았다. 매년 생일이면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소식을 전해 올 줄 알았는 데 아직 없어 궁금하다”고 했다.
시험관 아기는 1978년 영국의 로버트 G 에드워즈 박사에 의해 세계 처음 탄생된 후 7년 만에 국내에서도 시술에 성공해 당시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에드워즈 박사는 전세계 난임 부부에게 희망을 안겨 준 공을 인정받아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하지만 에드워즈 박사가 시도한 초창기 체외수정 시술법은 임신 성공률이 10% 이하로 매우 낮았다.
장 명예교수는 “쌍둥이 남매의 경우도 계속 실패하다 45번째 만에 결국 임신에 성공, 태어날 수 있었다”면서 “이후 수정란 배양 및 동결 기술, 정자 직접주입술(ICSI) 등 관련 기술이 많이 발전해 이제는 시술 주기당(2∼4주) 임신 성공률이 평균 40∼50%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장 명예교수는 지금은 한 차례든 두 차례든 체외수정 시술을 시도한 100명 가운데 75명은 최종 임신에 성공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고 했다.
보통 체외수정 시술은 여성의 생리주기 때 과배란을 유도하는 약물을 일정 기간 투여한 후 난자를 채취해 이를 시험관에서 정자와 수정시켜 수정란을 얻은 다음, 배양을 거쳐 이 중 가장 좋은 수정란을 골라 자궁 안에 이식하는 과정으로 이뤄진다. 시술 대상은 여성의 나팔관(정자와 난자의 수정이 이뤄지는 곳)이 막히거나 유착된 경우, 심한 자궁내막증(수정란의 착상이 이뤄지는 곳에 염증)이 있거나 원인 불명의 난임, 인공수정(배란일에 맞춰 운동성 좋은 정자를 직접 자궁에 넣어주는 방법)에 여러번 실패한 경우 등이다.
요즘엔 무정자증이나 희소 정자증 등 남성 요인에 의한 난임인 경우에도 정자 직접주입술을 통해 임신 성공률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게 됐다. 기존 체외 수정법은 다수의 정자와 난자를 시험관 안에 섞어 놓은 후 수정되기를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자 직접주입술은 머리카락보다 가는 유리관을 통해 한 마리의 건강한 정자만을 골라 난자 안에 직접 주입하는 방식이다. 정자의 수가 적거나 운동성이 떨어져 난임 판정을 받은 남성도 아기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된 것이다. 강남차병원 불임센터 원형재 교수는 “최근 미성숙한 정자로 정자의 꼬리가 생기기 전인 ‘원형 정세포’를 직접 난자에 주입하는 방법도 개발됐지만 아직은 실험실 수준의 연구 단계”라고 말했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임신율을 높이려는 노력 못지않게 ‘안전한 시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과배란 약물 주사를 되도록 사용하지 않으려는 추세가 나타나고 있는 것. 과배란 주사는 동시에 여러 개의 난자를 키우는 약물(고용량 호르몬제)을 투여하는 것으로, 복수가 차거나 숨이 가쁜 증상 등 부작용이 발생해 큰 고통이 따른다. 때문에 자연배란 주기 또는 최소한의 배란 유도를 통해 성숙되지 않은 미성숙 난자를 채취해서 외부에서 수정 가능한 난자로 키운 후, 체외 수정을 유도하는 방법(IVM)이 전세계적으로 활발히 시술되고 있다.
이처럼 체외수정 기술의 발전과 함께 국내 140만쌍으로 추정되는 난임 부부들에 대한 사회적, 제도적 지원도 따라줘야 한다. 현재 가구 평균 소득 150% 이하 난임 부부에 대한 경제적 지원이 되고 있지만 시술비 지원 범위의 확대가 필요하다. 마리아병원 윤지성 진료부장은 “또 지원을 받으려면 보건소와 의료기관을 오가며 서류를 제출해야 하는 등 ‘나는 난임 여성이다’는 사실을 노출시켜 심리적 부담감을 가중시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면서 “향후 보건소와 의료기관이 자체 소통 채널을 통해 해결하는 방안이 마련되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밖에 난임 시술을 위한 휴직, 휴가의 보장, 난임에 따른 스트레스 해결을 위한 국가 차원의 심리상담서비스 제공 등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