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을 만든 베토벤 의도는? 소중함, 우리 주변에 있었다… 연극 ‘33개의 변주곡’

입력 2010-10-24 17:26


베토벤은 귀가 안 들리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움에 처한 말년에 ‘디아벨리 왈츠에 의한 33개의 변주곡’을 만든다. 이 곡은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과 함께 불후의 명작으로 꼽힌다. 하지만 베토벤은 한 때 디아벨리 왈츠를 ‘구두 수선공의 헝겊조각’이라고 깎아내렸다. 그랬던 그가 왜 이 음악을 바탕으로 그토록 방대한 작업을 했던 것일까.



연극 ‘33개의 변주곡’은 이런 질문을 던지며 막이 오른다. 루게릭병에 걸린 음악학자 캐서린 브랜트(윤소정 분)는 왜 베토벤이 디아벨리의 왈츠에 집착했는지 파헤친다. 캐서린의 몸은 점차 굳어가지만 그럴수록 학문적 열의는 강해져만 간다. 지켜보는 딸 클라라(서은경 분)는 캐서린을 만류하지만 캐서린은 클라라에게 매몰차기만 하다.

극은 클라라의 시선을 따라 베토벤이 곡을 만든 이유를 추적해 간다. 관객도 진실을 찾아가는 이 여정에 동참한다. 그게 이 연극의 종착점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진짜 주제를 꺼내든다. 캐서린과 클라라의 관계는 연극이 진짜 하고자 하는 이야기다. 소중한 것을 옆에 두고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모습을 냉랭한 모녀를 통해 보여준다. 베토벤을 추적해가는 캐서린의 노력은 이를 더욱 도드라지게 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김동현 연출은 “존재하는 것을 그대로 보고 듣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라면서 “보이지 않는 것, 들리지 않는 것을 찾아가는 여정 속에서 이미 존재하고 앞으로도 영원히 있을 삶의 의미와 순간을 만나는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캐서린은 곡의 기원을 파헤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을 간과한다. 연구에만 몰입한 나머지 이 변주곡이 얼마나 아름다운 음악인지 깨닫지 못한 것이다. 캐서린이 딸에 대하는 태도와 같다. 클라라는 점점 쇠약해져가는 어머니와 좋은 시간을 갖길 원하지만 캐서린은 딸의 미래만 생각하면서 현재는 무심히 지나친다. 반목을 거듭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가서 있는 그대로 서로를 바라보고, 보듬는 캐서린과 클라라의 모습은 진한 여운을 남긴다.

연극이 끝나도 왜 베토벤이 디아벨리의 왈츠로 33개의 변주곡을 썼는지에 대한 답을 찾을 순 없다. 하지만 왜 곡을 썼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우리가 그토록 아름다운 곡을 현재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캐서린과 클라라가 살아 있는 이 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행복을 느끼듯이.

무대는 19세기 베토벤의 비엔나 작업실과 21세기 캐서린의 연구실을 교차시켜 보여준다. 베토벤이 음악 작업하는 것을 설명에만 의존하지 않고 직접 보여줌으로써 관객의 몰입도를 높인다. 특히 베토벤을 연기한 한지일의 연기는 이 연극에서 단연 돋보이는 지점이다. 한지일은 광기에 가까운 집착을 보이며 작업에 몰입하는 베토벤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혼자 허공에 손짓하며 “여기서 주제를 반복하고, 고음부분 다시 등장하고, 가라앉히고, 알레그로!”를 외치는 작곡 장면은 어둠에서 더욱 빛나는 베토벤의 열정을 잘 표현한다. 연극 내내 33개의 변주곡 중 20개가 라이브 연주로 극장에 울려 퍼지는 것도 매력적인 요소다.

‘33개의 변주곡’은 2009년 브로드웨이에서 처음 공연됐다. 당시 제인 폰다가 46년 만에 브로드웨이 연극무대로 복귀해 화제를 낳기도 했다. 11월 28일까지 동숭아트센터 동숭홀(1544-1555).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