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신학강좌] 예수는 누구인가
입력 2010-10-24 17:34
(17) 성경을 깊이로 읽기
직장 일이 바쁘기는 하지만, 요즘 마가복음을 읽고 생각하는 일에 푹 빠졌다. 그리 길지 않은 책인데 내용이 얼마나 깊은지! 마가복음을 따라가며 예수의 길을 추적하는 작업에서 이토록 깊고 너른 기쁨을 맛보는 것은 아내나 장모님 표현으로 하면 ‘하나님의 은혜’다. 신앙인들은 툭 하면 하나님의 은혜라고 한다. 전에는 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떤 일이든 좋은 일은 하나님이 도우신 것이고, 좋은 것은 무엇이든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안 좋은 일이 일어나면 그래도 더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고 그만한 것이 하나님이 함께하셔서 그런 것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뭐든지 하나님의 은혜다.
이제는 이 말이 이해될 듯도 하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가 살아오면서 스스로 관리할 수 없는 변수들이 있었다. 제아무리 정확하게 계획해도 어쩔 수 없고, 일이 진행되면서 안간힘을 쓰는데도 손쓸 수 없는 일들이 있었다.
아내 태중에 있는 둘째 아이의 장애 가능성이 그렇고, 아내와 연애할 때 아내 집안의 기독교적 내력이 또 그렇다. 내가 계획한 게 아니고, 특별히 내가 잘못했다든지 내가 잘한 덕분이라든지 하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 내 삶에 그 일이 발생했고 그 상황이 내 삶에 파고 들어왔다. 이젠 나와 무관할 수 없는 게 되었다. 좋든 싫든 내 삶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 한다.’ 지난 주일설교에서 목사님이 하신 말씀이다. 이 표현을 들으면서 번쩍 깨달음이 왔다. 그래, 어차피 걸어가야 할 길이라면 거기엔 창조주의 섭리가 있다!
마가복음이 이토록 재미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지만, 내 방식으로 하면 좋은 사람 만난 덕이다. 신학을 공부한 선배 말이다. 선배가 이렇게 조언했다. “너도 지성적인 관찰이 꽤 날카로운 사람인데, 꼭 기억할 게 있어. 성경은, 신적인 말씀이야. 이걸 잊으면 안 돼. 그러니까 성경을 읽을 때는 읽는 주체가 나 혼자가 아니야. 신이 도우셔야 하는 거야. 나 혼자 읽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같이 읽어주셔야 하는 거지. 신의 진리고 신의 뜻이니까 사람으로서는 도무지 다 깨달을 수 없는 거 아니겠어. 그래서 신의 도움이 필요해. 말하자면 ‘위에서 오는 도움’이 있어야 하는 거야. 아주 천천히 읽어. 1장에서 2장으로, 2장에서 3장으로… 그렇게 옆으로 읽어나가지 말아. 깊이로 들어가면서 읽는다고 생각해. 옆으로 읽어 가면 끝이 나오겠지. 16장이면 끝이니까. 깊이로 읽어 들어가면 끝이 없어. 어머니의 사랑이란 걸 생각해봐. 어머니 은혜는 끝이 없잖아….”
선배가 어머니 얘기를 할 때 성경을 깊이로 읽는다는 게 무언지 깨달았다. 몇 년 전 하늘나라로 가신 어머님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진해진다. 좀 더 잘해 드릴 걸, 어머님과 더 시간을 보낼 걸 하는 생각 말이다. 선배의 조언대로 마가복음을 깊이로 읽으려고 노력했고, 마가복음의 상황을 충분히 상상했다. 예수님이 걸어가는 길을 내가 같이 간다고 생각했다.
오병이어의 현장에, 칠병이어의 현장에 내가 있다고 치고 읽었다. 아, 새로웠다! 마치 다른 나라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예수님의 심정이 느껴지기도 했고, 예수님의 기적을 현장에서 체험하는 사람들의 감격이 마음에 다가왔다. 이렇게 어느 정도 더 계속하면 예수의 길이 무엇인지 보일 것 같다. 예수란 분이 누구신지 알게 될 것 같다. 아내는 벌써 잠자리에 들었다. 이젠 나도 자야겠다. 내일은 30분 더 일찍 출근해야 한다.
지형은 목사 (성락성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