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비 제막식 가진 동요작곡가 정근 “동요는 인간 자아 중 가장 순수”

입력 2010-10-25 00:45


“저∼멀리 하늘에 구름이 간다/외양간 송아지 음매음매 울 적에/어머니 얼굴을 그리며 간다/고향을 부르면서 구름은 간다”

동요 ‘구름’ ‘우체부 아저씨’ 등을 창작한 원로 동요작곡가 정근(80)씨가 지난 23일 전남 곡성군 오산면 봉동리 부들마을 선영에서 시비 제막식을 가졌다. 1930년 전남 광주에서 태어난 그는 50년대 말, 광주에서 새로나소녀합창단을 창단해 동요보급운동에 나선 이래 평생을 어린이 교육에 헌신했다.

“6·25전쟁의 가장 큰 희생자는 어린이들이었지요. 가족들은 한 순간에 생사를 달리하거나 뿔뿔이 흩어졌으므로 수많은 고아들이 생겨났지요. 이산(離散)과 가족 해체라는 사회적 문제에 직면했을 때 미래의 주인이어야 할 어린이들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동요 작곡을 시작한 게 벌써 60성상이군요.”

그가 50년대 중반, 작사·작곡한 ‘우체부 아저씨’의 가사 가운데 “시집 간 누나가 내일 온대요”라는 구절은 오래 전 연락이 끊긴 혈육들의 소식을 기다리는 그 자신의 심경을 옮긴 것이다. “제가 처음으로 음악을 접한 것은 대여섯 살 시절, 광주 양림동의 한 교회당에서 흘러나온 풍금소리였습니다. 노랑머리의 서양 선교사가 풍금을 치면서 찬송가를 불렀지요. 그때는 가사 내용도 알지 못하고 따라불렀지요. 마침 외가에 피아노가 있어서 차츰 건반을 두드렸고 화성악과 반주법을 스스로 익히게 되었습니다.”

광주서중을 졸업하고 대구사범대에서 수학한 그는 이후 광주교대 부설 유치원, 서울리라초등학교 부설 유치원 설립을 주도했고 60년대엔 아동 감각 기관의 훈련을 위한 놀이 기구 사용을 중시하는 몬테소리식 교육을 도입하기도 했다. 서른 중반부터 방송작가로 활동하면서 KBS의 간판 어린이 프로그램이었던 ‘영이의 일기’, ‘모이자 노래하자’ 등을 만들었고 KBS어린이합창단 지휘자를 지냈다. “‘구름’의 노랫말은 고향을 떠나 사는 사람들의 그리움을 담은 것입니다. 20여 년 전, 작곡가 이수인씨와 함께 KBS 라운지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즉석에서 작사·작곡을 했지요. 동시는 시의 원형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의 자아 가운데 가장 순수한 상태인 동심을 노래한 것이니까요. 까마득한 옛 선사시대 때도 어린이들이 읊조리며 놀던 동요가 분명히 있었을 겁니다. 동요는 최초의 어린이 놀이라고 할 수 있지요.”

“창작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그는 수십 편의 어린이 뮤지컬 극본을 썼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안녕 안녕’ 등의 동요와 그림책 ‘마고 할미’, ‘호랑이와 곶감’, 동요집 ‘유아 동요 1000곡집’ ‘봄 여름 가을 겨울’ 등을 펴냈다.

곡성=글·사진 김상기 기자 kitt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