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발전기금 420원’ ‘장관에게 데이트 신청’… 웃음이 묻어나는 시위가 통한다

입력 2010-10-22 18:05


여대생이 학교에 발전기금으로 낸 10원짜리 동전 42개, 교원 임용시험 준비생이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에게 ‘데이트하자’고 쓴 편지, 대학생들이 등록금으로 납부한 경운기와 재봉틀…. 저마다 항의의 뜻을 담은 의사표현으로 일종의 시위다. 시끄럽거나 거칠지 않지만 시선을 끈다. 그 힘은 해학이다.

◇‘노량진녀’ 이어 ‘420원 기부녀’=동국대 윤리문화학과 4학년 조승연(24·여)씨는 지난 15일 420원을 편지봉투에 넣어 ‘학교 발전기금’이라며 오영교 총장에게 보냈다. 같은 과 학생들에게서 1인당 10원씩 모은 돈이었다. 장난으로 비쳐질 듯한 조씨의 기부는 학과 구조조정에 반대한다는 뜻이었다.

동국대는 오 총장이 취임한 2007년부터 매년 입학성적과 취업률 등으로 학과를 평가해 정원을 조정하고 있다. 당초 30명이던 윤리문화학과 정원은 2011학년도 신입생 기준으로 15명까지 감소했다. 조씨는 대자보에서 “몇 년간 학과 인원이 줄어 많은 돈을 준비하지 못했지만 총장님이 추구하는 바에 조금이나마 들어맞았다는 생각에 뿌듯함을 느낀다”며 오 총장의 구조조정 방침을 비꼬았다.

지난 18일 연애편지 형식을 빌렸던 ‘노량진녀’ 차영란(29·여)씨의 시위도 효과적이었다. 이주호 교과부 장관은 차씨를 만나 제도 개선을 약속했다. 차씨의 요구는 응시생의 혼란을 막을 교원 임용계획 예고제 도입이었다.

차씨는 22일 “집회나 시위에 한 번도 참석해 본 적이 없지만 그만큼 절박해서 항의 시위를 결심했던 것”이라며 “투쟁적으로 하고 싶지 않아 평소 즐겨 쓰는 편지 형식을 빌렸다”고 말했다.

◇참신함이 시선 끌어…기존 시위문화 탈피=조씨와 차씨의 공론화 전략은 대학생들이 등록금 인상에 반대하며 벌이는 이색 시위와 상통한다. 2006년 초 부산 동아대 학생들은 경운기, 재봉틀, 난로 등 각종 현물로 등록금을 대납했다. 같은 해 이화여대 학생 3명은 등록금 액수만큼 지폐를 659m 길이로 이어 붙여 학교에 냈다. 한국외대와 한양대 등에서는 영화 포스터를 모방한 비판이 유행했다.

이들은 대중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다. 전문가들은 투쟁 일변도였던 기존 시위에서 벗어나 은유와 풍자 같은 부드럽고 참신한 방법을 도입한 효과로 본다. 무거운 주제를 다루더라도 볼거리가 있고 부담 없이 호응할 수 있는 형식을 선호하는 젊은 세대의 특성을 반영한다는 설명이다.

의제를 가볍게 만들어 대중이나 당국이 절박한 사정을 간과토록 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420원을 학교에 기부한 조씨의 시위에 대해 동국대 관계자는 “그냥 웃고 만다”고 말했다.

해학을 전략으로 삼은 시위는 이런 한계가 있더라도 의제를 공론화하는 데 효과적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일방적인 의사표현보다 흥미롭고 신선한 방식의 주장이 호소력 있다는 것이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최근 등장한 시위는 허를 찌르는 통쾌함이 있어 대중의 관심을 쉽게 끌어낸다”며 “사안마다 다르겠지만 효과적으로 나타난 만큼 점차 확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