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성 같은 삶 정경옥 목사, 오늘의 한국교회에 말을 건다면…

입력 2010-10-22 17:29


“그의 공적은 혜성같이 뚜렷했다. 그의 활동기간은 혜성같이 짧았다. 그리고 혜성이 사라진 후 기억하는 이가 적듯이 오늘날 신학자 정경옥 교수를 기억하는 이가 드물다.”



원로 신학자 유동식 교수는 저서 ‘한국신학의 광맥’(1982)에서 철마(鐵馬) 정경옥(사진) 목사를 이렇게 평했다. 정 목사는 김재준 박형룡 목사와 함께 1930년대 한국을 대표했던 신학자이자 감리교 목회자였다. 1903년 전남 진도에서 태어난 정 목사는 서울로 유학, 경성고등보통학교에 다니던 1919년 3·1운동 학생 시위에 참가했다가 제적당했다. 낙향해 ‘독립신문’ 등 유인물을 제작해 배포하다 체포돼 목포 형무소에서 6개월간 옥고를 치렀는데, 이때 성서를 접하고 신앙체험을 한 뒤 기독교로 개종했다. 이후 서울 감리교신학교를 졸업하고, 일본과 미국 유학을 거쳐 1931년부터 감리교신학교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1945년 4월 42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강단에서, 고향에서, 목회 현장에서 뜨거운 영성을 소유한 신학자로 살았다. 한국 최초의 학문적 조직신학서로 평가되는 ‘기독교 신학 개론’(1939) 등 저서와 60여편의 논문을 남겼다.

정 목사의 생애와 신학을 재조명하는 학술포럼 ‘정경옥 목사, 오늘의 한국교회에 말을 걸다’가 24일 서울 서초동 수표교교회(김고광 목사) 예루살렘 성전에서 열린다. 수표교교회 창립 100주년을 기념해 2007년 설립된 수표교포럼위원회가 주관한다.

홍승표 목사(연세대 교회사 전공 박사과정)는 포럼 주제발표에서 “정경옥은 서구 신학을 가장 체계적으로 수용한 신학자면서도 ‘토착영성운동’에 관심을 가졌다”며 “그는 ‘자유주의 신학자’로 오인받아 왔지만, 실상 ‘진보적 복음주의 신학자’로 재조명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홍 목사는 “정경옥은 교회가 지나치게 제도화되고 조직화 됐을 때 ‘생명을 지닌 유기체’로서의 속성을 상실해 버릴 위험이 있다고 간파했다”고 평가한다. 심광섭 감리교신학대 교수는 ‘철마 정경옥 목사의 복음적 삶(生)의 철학’이란 발표문에서 정 목사를 한국교회와 신학사에서 근대적 사고와 가치를 펼쳤던 최초 인물로 설명한다. 심 교수는 “정 목사의 신학은 개념이나 논리를 통한 토착화가 아니라 삶의 열정을 통해 복음의 생활화, 주체화를 일궈냈다”고 설명한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