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태형] 교회 파산
입력 2010-10-22 17:20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수정교회를 처음 방문한 것은 1992년 여름이었다. 수정교회는 당시 미국을 방문하는 세계의 크리스천들이 반드시 찾는 신앙 명소였다. 개척자인 로버트 슐러 목사는 ‘주님이 만드신 위대한 자연을 조망하면서 예배드릴 수 없을까’를 생각하며 전면이 유리로 된 수정교회를 건축했다고 한다.
수정교회는 ‘부자 교회’로 유명했다. 주 신자층인 오렌지카운티의 성공한 백인들은 교회 충성도가 높고 헌금도 많이 냈다. 슐러 목사는 노만 빈센트 필 박사 등의 계보를 잇는 긍정과 적극적 사고의 신봉자였다. 그의 ‘긍정의 신학’에 백인 중산층이 호응했다. 자신들의 부와 번영을 신학적으로 지지해 줬기 때문이다.
수정교회의 각종 프로그램은 방송사의 버라이어티쇼에 필적한다. 특히 부활절과 성탄절의 공연은 라스베이거스의 공연 못지않다. 실제로 수정교회의 성탄절 공연인 ‘크리스마스의 영광’을 한번 관람했었다. 예배당 안에서 ‘천사’로 분한 수많은 사람이 와이어를 타고 날아다녔다. 장엄한 오케스트라에 화려한 조명 등은 관람객의 찬사가 절로 나오게 만들었다. 엄청난 돈이 들었음은 물론이다.
그런 수정교회가 최근 남캘리포니아 법원에 파산 보호를 신청했다(본보 10월 22일자 33면). 슐러 목사의 딸로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세일라 슐러 콜밴 목사는 파산 보호 신청에도 불구하고 교회 사역은 지속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럼에도 수정교회의 화려한 명성은 이제 희미한 옛 그림자가 되고 있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결국 아무리 유명한 대형 교회라도 쇠락할 때가 있다. 왕조사가 왕조의 흥망성쇠를 다룬 것이라면 교회사는 교회의 번성과 퇴조에 대한 기록이다. 이 땅에서 끝까지 영화를 누린 절대 교회는 없다는 사실을 교회사는 증언하고 있다.
지금 미국에서는 한 해에 3000여개 교회가 문을 닫는다. 대부분은 소형 교회지만 중대형 교회도 예외는 아니다. 그럼에도 생존하는 교회도 적지 않다. 이들 생존 교회의 공통점은 최소한의 운영(Minimal Operation)을 한다는 점이다. 철저히 저비용 구조를 고수한다. 불필요한 ‘교회 일’에는 최대한 비용을 아끼면서 모든 여력을 ‘주의 일’에 쏟는 교회는 좀 더 오래 생존할 수 있다. 수정교회의 파산 신청을 한국 교회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태형 i미션라이프부장 t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