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무 시인 산문집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 인생의 가을서 돌아 본 젊은날

입력 2010-10-22 17:38


“가을은 인화물질을 적재한 계절이다. 언제든 계기만 주어지면 불을 지필 수 있다. 가을이 오면 버릇처럼 신중해지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가을에 지면 일생을 탕진할 수도 있다는 까닭 없는 불안감이 조성되는 것이니, 이것이 질병이 아니고 무엇이랴.”(72쪽)

우리 문단의 마당발이자 알아주는 입담의 소유자인 이재무(52·사진) 시인이 스스로 “가을을 탄다”고 고백하기는 산문집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화남출판사)을 통해서다. 인생의 가을에서 바라보면 청춘의 계절인 봄날의 풍찬노숙과 질풍노도의 혼곤함이 비로소 자신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관조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가을은 오히려 봄보다, 여름보다 내면에 불붙기 쉬운 계절인 것이다.

“이제 곧 곡식들은 자신들이 태어나고 자란 전답을 떠날 것이고, ‘초록은 지쳐 단풍이 들 것이고’ 과일들이 떠난 과수의 유실수들은 갑자기 늙어갈 것이다. 채운 것들을 비우는 시간 속에서 새롭게 공간이 열릴 것이다.”(76쪽)

그렇다. 그는 오고 가는 것에 대해 노래한다. 가난의 울분과 설움을 뒤로 하고 그가 고향인 충남 부여를 떠나 상경한 지 어언 30년. 1983년 ‘삶의 문학’을 통해 등단한 그는 30년 가까운 세월을 뒤로 하고 이렇게 고백한다. “내가 시에 입문하고 시를 운명으로 받아들인 것은 문학에 대한 각별한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내 개인의 특수한 환경에서 말미암은 것이었다. 요컨대 내가 시를 찾아 나선 것이 아니라 어느 날 불쑥, 넝마의 생활 속으로 시가 얼굴을 내밀어왔던 것이다.”(47쪽)

시인은 도통 철이 들지 않는 동물이라는 명제도 세월 앞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그 세월이 그 앞에 닥쳤다는 말인가. 스스로 고백하거니와 그는 “스무 살 시절이 온통 잿빛이었다”고 에둘러 말하고 있다. 스무 살 시절, 그는 어머니를 잃었다. 어머니는 작고 당시 마흔 여덟이었다. 이제 어머니가 세상에서 먹은 나이를 훌쩍 넘겨 반백이 되어가고 있는 마당에 시인은 종산에 어머니를 묻고 돌아온 날, 방 구석 앉은뱅이책상 위의 부의록(賻儀錄)을 끌어다 빈 페이지를 열고 첫 시를 습작했던 그 밤을 떠올린다. “시집오면서 청상과부 올케에게/피눈물로 맡겨 놨던 열 살짜리 막내삼촌도/어른이 되어 돌아오셨슈/보시는규, 엄니만 일어나시면/사는 죄루다 못 만난 친척들의/그리움 꽃 활짝 필 흙빛 얼굴들을/보시구서도 내숭떠느라 안 일어나시는규”(‘엄니’ 일부)

그에게 생애 첫 시를 안겨 주고 돌아가신 엄니. 그래서 그의 문장은 첫 시처럼 늘 울컥이고 있는 것이다. 그의 산문은 이토록 진솔해서 두고두고 아껴 읽어야할 문학적 분신이다.

정철훈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