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진 첫 장편 ‘고양이 호텔’… 현대판 ‘독일동화 라푼젤’

입력 2010-10-22 17:38


원뿔 모양의 지붕이 얹어진 옥상 위 세 개의 탑, 프로방스풍의 돌출 창과 요철 모양으로 마무리된 옥상 난간, 그리고 온통 모래로 뒤덮인 학교 운동장만 한 넓은 마당. 베일에 싸인 여주인공 ‘고요다’가 188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사는 3층짜리 대저택의 음산한 풍경이다.

젊은 작가 김희진(34)의 첫 장편 소설 ‘고양이 호텔’(민음사)은 성채에 갇힌 채 긴 머리카락을 창밖으로 늘어뜨리는 독일동화 ‘라푼젤’을 연상시킨다. 동화 속에서 라푼젤의 머리카락이 바깥세상과 소통하고 싶다는 상징으로 쓰였다면 ‘고양이 호텔’에서는 고양이 자체가 세상과의 소통에 목말라한 상징으로 등장한다.

대저택의 여주인 고요다에 대해 알려진 것이라고는 문학상 현상 공모에 당선되어 3억원의 상금을 거머쥐었고 당선작 ‘뒤꿈치’가 70만부나 팔려나간 초대형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단순한 사실 뿐이다. 어느 날 ‘인 스토리’의 기자 강인한에게 이 얼굴 없는 작가를 찾아가 인터뷰를 해야 하는 임무가 주어진다. 예상대로 문전박대를 당하고 만 강인한은 코피를 쏟으며 기절한 척 술수를 부린 끝에 저택에 발을 들이는데 성공한다. “꿈을 꾸었다. 이번엔 좀 끔찍한 꿈이었다. 감나무에 고양이 열매가 열렸다며 그녀가 나를 마당으로 끌고 갔다. 나가 보니 정말로 감나무에 고양이들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121쪽)

강인한은 지하 와인셀러에 내려갔다가 선반을 가득 채운 빈 와인병에 각기 다른 남자 이름이 적힌 스티커가 붙어 있는 걸 발견한다. 게다가 188마리의 고양이 가운데 빨간색 목걸이를 한 녀석들이 모두 스물 두 마리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도시 인근 25명의 실종 사건과 고양이 목걸이의 펜던트 뒷면에 쓰인 날짜와 이름에 대해 의심을 품은 강인한은 고요다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그녀의 명함은 더욱 이상하다. 명함 앞면엔 ‘무엇이든 같이 해 주는 여자’라고 적혀 있고 뒷면엔 ‘단, 같이 잠을 자 줄 수는 없습니다. 같이 죽어 줄 수도 없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이 모든 것이 말하는 건 무엇일까. 실종된 사람들은 과연 이 대저택에서 고요다에 의해 살해된 것일까. 그러나 이에 대한 대답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소설 속 고요다가 만든 쇼로서의 ‘고요다쇼’이자 궁극적으로는 작가 김희진이 만든 ‘김희진쇼’일테니까. 문제는 이 소설이 지향하는 독특한 혼종의 방식이다. 소설의 몸체를 이루는 동화와 추리소설과 인터뷰와 취재 형식의 결합이야말로 작가가 고민해온 소설이라는 형식의 존재방식인 동시에 글쓰기를 통해 스스로를 재탄생시키고 있는 작가 김희진의 존재방식인 것이다. 다시 말해, 현대판 라푼젤이야말로 작가라는 직종의 상징인 것이다.

정철훈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