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주의 4인방'(옥한흠 홍정길 하용조 이동원 목사) 그 이후

입력 2010-10-22 13:34


[미션라이프] 고 옥한흠 사랑의교회 원로목사, 홍정길 남서울은혜교회 목사, 하용조 온누리교회 목사, 이동원 지구촌교회 목사. 언제부턴가 이들에겐 ‘강남 4인방’ 혹은 ‘복음주의 4인방’이란 별명이 따라다닌다. 강남을 지역 기반으로 한 목회, 한국 교회 내 복음주의 확산에 기여했다는 평가와 함께 붙여진 것이다. 곧 ‘40년 지기’인 이들에 대한 평가가 이어질 전망이다. 맏형격인 옥 목사가 지난달 별세하면서다. 2개월 후면 공식 은퇴하는 이 목사를 비롯해 홍 목사와 하 목사도 차례로 은퇴를 준비하고 있다. 객관적인 평가는 이들의 은퇴 훨씬 이후가 되겠지만 옥 목사 사후라는 상황에서 이들이 한국 교회에 남긴 유산은 무엇이고, 이들을 계승해야 할 후배 목회자들의 역할은 뭔지 짚어봤다.

◇4인방, 어떻게 만났나=이들의 만남은 196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홍 목사는 CCC 총무를 역임한 뒤 총신대에 입학했고, 홍 목사의 제자였던 하 목사는 CCC 간사로 사역할 때다. 이 목사는 한국십대선교회(YFC) 총무였다. 이 목사는 홍 목사를 강사로 자주 초청해 서로의 비전을 나눴고, 이것이 결국 ‘형님-동생’ 사이로 발전했다. 성도교회 대학부를 지도하던 옥 목사는 선교단체에 눈뜨면서 이들과 접촉하게 됐다. 이 목사는 “복음에 대한 확신이 서로를 끌었던 것 같다”고 당시 만남을 회고했다.

이들의 굳건한 연대 이면에는 차이점도 많았다. 교단이 달랐고, 나이도 달랐고, 교회론과 목회론도 차이가 있었다. 이와 관련해 옥 목사가 생전에 들려준 내용이라며 총신대 박용규 교수가 전한 내용은 이렇다. “모든 부분이 같기에 친한 게 아니고 다름이 있음에도 서로 배울 수 있고 보완할 수 있기에 서로를 존중하고 알아가려 하고 있다.” 이들은 목회뿐만 아니라 다양한 활동에서도 동역했다. 86년 코스타 창립, 93년 남북나눔운동 창립, 97년 ‘한국교회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한미준) 창립에 함께 하면서 해외 유학생, 통일과 북한선교, 한국 교회 갱신에도 이들은 힘을 합쳤다. 이들의 목소리는 하 목사가 발행하는 ‘목회와 신학’의 정기적인 좌담회를 통해 한국 교회에 큰 도전과 울림을 줬다.

박 교수는 자신의 저서 ‘한국교회를 깨운 복음주의운동’(두란노)에서 이들의 연대를 가능하게 한 매개체로 복음주의를 꼽았다. “1970년대 복음주의 이상을 가진 젊은이들이 교단의 벽을 넘어 하나로 연합해 복음주의 정체성을 가지고 복음주의 운동에 동참함으로써 20년이 지난 지금 한국의 복음주의는 이들에 의해 널리 저변 확대될 수 있었다. 이들의 한 가지 분명한 공통점은 복음주의 정체성이다. 이들은 각자 자신들의 방향에서 그 일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복음주의라는 정체성과 전체 한국 교회를 동시에 염두에 두면서, 사역의 현장에서 서로간의 협력을 아끼지 않았다.”

◇4인방, 뭘 기여했나=침신대 박영철 교수는 각 개인을 복음에 직면하게 한 것을 4인방의 가장 큰 기여도로 꼽았다. 특히 교회 성장의 시기에 각 개인으로 하여금 구원의 확신 가운데 살게 했다는 것은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또 “성경과 무관한 미신적인 신비주의의 문제점을 극복하도록 한국 교회에 도전을 줬다”며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복음의 일꾼이고 사역자라는 만인제사장직의 교리를 보편화한 데도 이들의 공이 컸다”고 밝혔다.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이상화 사무총장은 “복음적 내용을 탁상공론에만 그치게 하지 않고 함께 논의하고 고민한 후엔 항상 실천하려고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여줬다”면서 “교단의 배경이 다른 네 분의 연대는 새로운 교회 연합의 가능성과 물꼬를 튼 것으로 사심을 내려놓은 연대가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 아주 중요한 사건”이라고 말했다.

무학교회 청년부담당 이상갑 목사는 도덕성을 꼽았다. “많은 신학생들이 이분들을 건강한 모델이라고 생각하고 따른 데는 영성과 청년성도 있지만 도덕성도 컸다”며 “결국 도덕성을 바탕으로 한 영성이 수많은 후배 목사들로 하여금 팔로어가 되게 했다”는 것이다.

박용규 교수의 4인방 평가는 좀더 구체적이다. 박 교수는 “옥 목사는 제자훈련의 장인 사랑의교회가 있었고, 그것을 필요로하는 한국 교회가 있었기에 네 사람 중에서 보폭이 가장 넓었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홍 목사에 대해서는 “통일운동과 대북선교에 있어서 실질적 주역”이라며 “복음주의 서클의 목회자들이 침묵하던 부분을 일깨워서 그들이 통일운동과 북한선교에도 용기를 낼 수 있도록 동력을 발휘할 수 있게 했다”고 평했다. 하 목사와 관련해서는 “문서선교를 통해 기독교 문화를 한국 교회와 사회 속에 뿌리내리게 했다”며 “전주대 한동대 횃불트리니트대 설립을 통해 기독교의 이상을 실현해간 것은 세 목사와 차별화되는 부분”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이 목사에 대해서는 “장로교 중심의 한국 교회에서 침례교를 한국 교회의 주요 교단 중의 하나로 올려놓음으로써 한국 교회에 풍요로움을 가져다줬다”고 평가했다.

◇4인방, 그럼에도 불구하고=학원복음화협의회 상임대표 권영석 목사는 “다방면에서 확실한 족적을 남겼다”고 4인방을 평가하면서도 “대도시 중산층과 문화적인 코드가 맞춰지면서 급성장을 하게 된 것은 결국 한국 교회 전체적으로는 건강한 균형을 무너뜨리는 위기를 불러왔다”고 지적했다. 권 목사는 “이들이 한국 교회에서 이상적인 모델처럼 너무 부각되는 바람에 마치 아파트 모델하우스처럼 누구든지 본받아야 할 기준처럼 비쳐졌지만 보편성을 지니지 못한 역설이 성립하게 됐다”며 “많은 지역 교회들이 좌절을 경험하고, 도리어 수평이동으로 인한 피해의식에 시달리게 된 것은 아쉬운 점”이라고 말했다.

박영철 교수는 “개교회주의를 부채질하거나 대형교회가 이상적인 교회라는 도식을 신학생들에게 심어줬다”며 “비록 그들이 의도하지는 않았다 할지라도 성공주의나 대형주의를 선(善)으로 보는 이상한 풍조를 조장한 면은 4인방의 한계점”이라고 꼽았다.

이상화 목사는 “네 분의 연대의식이 너무 강한 것처럼 비쳐져서 외부인이 공동체 안으로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인식을 준 측면이 있다”며 “앞으로 네 분의 좋은 의식을 풀뿌리 차원으로 계승 발전시키는 방안을 고민하는 게 후배들의 과제”라고 말했다.

◇4인방, 후배 목회자들은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4인방 이후에 요구되는 리더십으로 후배 목회자들은 소수의 리더십이 아닌 팀워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상갑 목사는 “앞으로 한국 교회는 특정 소수가 아니라 건강한 다수가 이끌어가야 한다. 그럴 때 한국 교회는 건강해질 것”이라고 했고, 이상화 목사도 “섬기는 목회현장의 크기나 위치에 상관없이 옆에서 뛰고 있는 동역 목회자들과 하나님 나라의 전체성 관점에서 좀더 깊이있게 연대해서 팀플레이를 심화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 목사 역시 “기독교의 신뢰도가 땅에 떨어진 상황에서 다음 세대의 과제는 결코 만만하지 않다”며 “이전과는 비교도 안되는 창의성과 연대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4인방 중의 한 사람인 이동원 목사는 후배 목회자들이 갖춰야 할 리더십으로 서번십(servantship)을 꼽았다. 이 목사는 “자칭 리더는 넘쳐나는데 서번트(servant)는 잘 보이지 않는 게 걱정”이라며 “리더십보다 서번십이 더 선험되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이 목사는 “지금은 건강 목회, 세계선교, 통일한국 같은 더 큰 그림의 미래를 위해 뜻있는 지도자들의 연합이 필요한 때라고 믿고 있다”며 후배 목회자들간의 연대를 강조했다.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김성원 기자 kernel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