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섹’ 역풍 맞은 하나금융… 믿었던 최대주주 하루아침에 지분 전량 매각

입력 2010-10-21 18:24


하나금융지주가 ‘테마섹 역풍’을 맞았다. 강력한 지원세력으로 여겼던 최대주주 테마섹이 지분을 모두 매각했기 때문이다.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의 계열회사인 안젤리카 인베스트먼트는 하나금융지주 지분 9.6%를 보유하고 있었다.

2대 주주로 골드만삭스 자회사인 GS데자쿠(지분율 8.66%)마저 지분을 팔 가능성이 있다는 시장 전망까지 나오자 하나금융지주 주가는 급락했다. 이러한 지배구조 변화 등으로 우리금융지주를 인수하려는 하나금융의 계획은 차질이 불가피하게 됐다.



◇하나금융 주가 급락=테마섹은 하나금융 주식 2038만주를 CS증권 창구를 통해 21일 장이 열리기 전에 모두 팔아치웠다. 할인율 6%를 적용해 국내외 기관투자가들에 판 것으로 알려졌다.

테마섹이 지분을 전량 매각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날 하나금융 주가는 유가증권시장에서 전일 대비 7.31%나 빠진 3만2950원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해 10월 5일 대규모 유상증자를 추진한다는 소식에 14.42% 내린 이후 가장 큰 하락폭이다. 테마섹이 투자자금을 회수하면서 우리금융 인수에 필요한 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테마섹 변수’가 심상치 않자 하나금융은 주요주주에게 매각 배경 설명을 담은 자료를 급히 보냈다. 테마섹 매각은 하나금융의 인수·합병(M&A) 전략과는 무관한 내부사정이라는 해명이다.

테마섹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대규모 손실을 본 뒤 금융주 비중을 줄이는 투자 포트폴리오 조정을 하고 있다. 테마섹은 하나금융 지분을 매각한다는 소식이 알려진 20일 브라질 자원개발 업체인 오데브레트 오일앤가스 지분 인수를 위해 4억 달러를 투자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매각 시점이 갖는 미묘함 때문에 시장에서는 다르게 판단한다. 테마섹이 그동안 우리금융 M&A를 반대했었던 점이 지분 전량매각으로 이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여기에다 골드만삭스 등 다른 대주주가 지분을 매각할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골드만삭스가 국내 은행에서 돈을 빌려 지분 투자를 했는데 만기가 지난 7월로 지나 지분을 팔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우리금융 민영화 차질 없나=불똥은 우리금융 민영화로 튀었다. 유력주자인 하나금융이 내부 걸림돌을 만났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달 말 예금보험공사가 보유한 우리금융지주 지분을 매각하는 입찰 공고를 낼 예정이다. 정부는 우리금융 민영화 원칙으로 공적자금 회수 극대화, 금융산업 발전을 내세우고 있다. 이 때문에 경쟁 입찰을 원한다.

하지만 하나금융이 입찰에 참여하지 못하면 유효한 경쟁구도가 성립되지 않을 수 있다. M&A를 추진하는 하나금융과 과점주주체제 구축을 선호하는 우리금융이 경쟁하는 체제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자금력이 취약한 하나금융은 연기금, 외국계 투자자 등을 재무적 투자자(FI)로 끌어들여 정부가 보유한 우리금융 지분 56.97%를 사들일 생각이었다.

금융권 관계자는 “테마섹이 하나금융과 우리금융 합병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면 투자금을 회수하기보다 자금을 더 지원했을 것”이라며 “경쟁 구도가 무너지면서 우리금융 민영화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하나금융은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테마섹은 언제든 차익을 남기고 떠날 수 있는 단순한 재무적 투자자여서 이번 지분 매각이 그룹 경영전략에 미칠 영향은 없다는 것이다.

김찬희 기자 c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