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불내 일가족 살해… 범인은 중학생 아들
입력 2010-10-21 23:35
21일 새벽 서울 하왕십리동 한 아파트에서 불이나 일가족 4명이 숨졌다. 중학생 아들이 때리고 잔소리하는 아버지 없이 어머니와만 살겠다고 불을 질렀지만 아버지 뿐 아니라 할머니, 어머니, 여동생까지 숨졌다. 서울 성동경찰서는 존속살해 혐의로 중학교 2학년 이모(13)군을 검거했다.
이군은 오전 3시35분쯤 집안에 휘발유를 뿌린 뒤 라이터로 불을 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이군은 “춤추고 사진 찍는 걸 좋아해 예술고등학교로 진학하려는데 아버지는 ‘판·검사가 돼라’고 잔소리하며 때렸다”면서 “아버지만 없으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화재 직전 이군의 아버지는 안방, 어머니와 동생은 거실, 할머니는 작은방에서 자고 있었다. 이군은 이를 확인하고 안방부터 부엌, 거실까지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렀다고 경찰은 전했다. 평소 할머니와 함께 자던 이군의 고모는 동대문 새벽시장에 장사를 하러 나가 있어 화를 면했다.
이군은 지난 19일 오후 8시30분쯤 대형마트에서 10ℓ들이 물통을 산 뒤 인근 주유소에서 “학교 과학시간 준비물로 필요하다”고 속여 휘발유 8.5ℓ를 구입한 것으로 파악됐다. 휘발유가 담긴 물통을 배낭에 넣고 귀가한 이군은 이를 자신의 방에 숨겨 놓았다가 범행에 사용했다.
범행 직후 이군은 방범용 감시카메라에 찍히지 않도록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으로 도주했다. 휘발유통은 1층 현관 옆에 버렸고, 범행 당시 점퍼는 휘발유 냄새가 나자 노숙인에게 벗어줬다.
이군은 1시간30분 후 아파트로 돌아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어디서 불이 났는지 경비원에게 물었다. 경비원이 자신의 집을 가리키자 이군은 “엄마”를 부르며 울었다. 이군은 당초 경찰 조사에서 “홍대 근처에 있다가 왔더니 집에 불이 나 있었다”고 했으나 행적을 추궁당하자 범행 사실을 자백했다. 이군은 평소 아버지에게 골프채 등으로 폭행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주민은 “이군 아버지가 아들을 골프채로 심하게 때리는 것을 자주 봤다. 언젠가는 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았다”고 말했다.
만13세인 이군은 현행법상 형사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에 형사처벌을 받지 않고 법원 판단에 따라 소년원이나 보호관찰소에 수감된다. 경찰은 이군을 서울가정법원 소년부에 송치했다.
강창욱 김수현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