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문일] 손학규의 변신은 무죄?

입력 2010-10-21 17:44


과격해졌다. 거칠다. 2년여 만에 정치 일선에 복귀한 손학규 민주당 대표의 인상이다. 과격하므로 거칠다. 거칠다 보니 실수가 나온다. 고랭지 배추 흉작으로 배추값이 폭등한 것을 4대강 사업 때문에 경작면적이 줄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식견이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니라면 이치에 닿지 않는 강변(强辯)이다. 그로부터 일주일도 안 돼 배추값은 절반으로 떨어졌지만 손 대표는 아무 말 없이 넘어갔다.

어색한 작위(作爲)와 비겁한 부작위(不作爲).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찾은 손 대표는 무릎부터 꿇었다. 과거에 “인간적으로 용서받을 수 없는 결례”를 범했다며 사죄했다. 손 대표는 경기지사 시절 노 대통령을 ‘경포대’(경제를 포기한 대통령)라고 비난했다. 그것이 인간적으로 용서받을 수 없는 정도의 결례일까? 공당의 대표가 되어서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 죽음에 조문가지 않았다. 비서실장을 대리로 보냈다지만 그걸로 양해될 사안이 아니다. 이야말로 이해하기 어려운 인간적 결례 아닌가. 손 대표의 이념 정체성에 의문부호가 찍힌다. 종북, 친북까지는 아니겠지만 북한 눈치를 보다니 대한민국 지도자 자격에 의심이 든다.

합리적 비판 아쉬워

비합리성이 두드러진다. 대통령이 포기 선언한 대운하를 억지로 4대강 사업에 연결시키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과장법이 심하다. 이명박 정부에 대해 폭정(暴政)을 한다고 비난했다. 신념은 강해졌으나 내공(內功)이 없어 보인다. 배추값이며 서민복지와 같은 포퓰리즘적 주제에 손길을 뻗는다. 야인 생활 2년이면 한 소식 했을 줄로 알았는데 비전 제시가 없다. 잔펀치만 날린다.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반성이 지금도 있다”고 손 대표는 말했다. 이래서는 노무현 아류다. 제2의 노무현이라도 되려는 건가. 시쳇말로 ‘올드(old)’하다. 정치인으로서 성공적인 브랜드가 되려면 자기 제품을 들고 나와야 한다.

예상을 뒤엎고 민주당 지도부 경선에서 승리해서일까. 손 대표는 그 후 줄곧 업(Up)돼 있는 듯하다. 흥분이 덜 가신 듯한 공격적 발언들로 지지율은 부쩍 올랐다. 그러나 대선을 2년 여 남겨둔 시점의 지지율이 허수(虛數)임은 잘 알 터이다. 숫자의 마술에 빠지지 말고 좀 차분하게 대국(大局)을 보아야 한다.

사람들이 쉬 잊지 않는 게 있다. 손 대표의 정치적 정체(正體)다. 한나라당 시절의 정치인 손학규는 합리적 보수, 중도 우파를 상징했다. 2007년 대통령후보 경선을 앞두고 대통합민주신당으로 옮겼을 때 그는 자신의 급변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국민이 수긍할 수 있는 전향서라고 할 만한 게 없었다. 한나라당에서 후보가 될 가능성이 보이지 않자 이적했다는 분석 외에 달리 해석하기가 어려웠다. 만약 그가 대통합민주신당의 대선 후보가 됐더라면 그의 이적(移籍)에 대한 논란이 대선의 큰 이슈가 됐겠지만 경선에서 패배하는 바람에 묻혀버렸다.

정체성 의문 해명해야

손 대표는 민주당원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기껏 과거 운동권 경력을 들어 친연성(親緣性)을 강조하고 있다. 그럴진대 왜 보수정당에 들어갔고 어떻게 14년 동안 동거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지금이야말로 지난 한나라당 14년을 설명해야 할 때다. 그런 연후에 달라진 손학규의 ‘사용설명서’를 내놔야 한다. 그래야 대선 후보가 되었을 때 국민이 미심쩍어하지 않고 판단을 내릴 것이다. 그러지 않고는 회색인, 중간자, 기회주의, 언제 다시 돌아설지 모를 사람이라는 의구의 눈길이 그를 따라다닐 것이다. 정치인의 변신은 무죄가 될 수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손 대표를 두고 “보따리장수”라고 한 비판은 아직도 불식되지 않았다. 분명한 대답이 있어야 한다.

문일 논설위원 norw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