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력·스타일·자기세계·아이디어·몰입… ‘명화를 결정짓는 다섯 가지 힘’

입력 2010-10-21 18:13


명화를 결정짓는 다섯 가지 힘/사이토 다카시/뜨인돌

어떤 그림이 명화이고 어떤 작품이 졸작인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가 세계적인 명화라는 데 이견을 표명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이 어떤 기준으로 명화가 됐는지 설명하라면 명쾌하게 답변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일본 메이지대학 문학부 교수인 저자는 평범한 그림과 위대한 걸작을 구분 짓는 요소로 다섯 가지를 들었다.

첫째는 표현력이다. 영국 런던 내셔널갤러리에 걸려있는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의 결혼’을 보자. 캔버스에는 결혼을 하는 한 쌍의 남녀가 나란히 서 있다. 이 두 인물의 완성도도 놀랍지만, 자세히 보면 두 사람의 발 아래에 앉아 있는 개와 천장에 달려있는 샹들리에, 벽에 걸려있는 거울 등 주변 사물 하나하나까지 놀라울 만큼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

특히 조그만 거울에 나타나는 두 사람의 뒷모습과 작가 자신의 형상까지 담겨있는 표현력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 그림에 등장하는 개는 여성의 정절을 상징하고, 벗어놓은 샌들은 그들이 신성한 장소에 있음을 나타내며, 창가에 놓인 사과는 인간의 원죄를 드러내는 식으로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기에 명화가 될 수밖에 없는 조건을 갖추었다.

둘째는 자신만의 스타일이다. ‘수련’의 모네는 화면에 빛을 포착한 화가로 이름을 알렸고,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르누아르는 여성의 생동감 넘치는 영화적 아름다움을 캔버스에 담아낸 행복한 화가라는 스타일을 구축했다. ‘붉은 조끼를 입은 소년’의 세잔은 꿈 속 세계를 붓질로 재현함으로써 ‘근대미술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얻었다. 샤갈과 마티스도 자기 스타일을 가진 작가다.

명화의 세 번째 조건은 작가가 세태에 곁눈질하지 않고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고집했다는 점이다. 밀레의 ‘만종’은 직접 씨 뿌리고, 키우고, 거두고, 감사하는 생활 속에서 이상적인 인간상을 발견한 작가의 경험이 그림으로 되살아나 명화가 됐다. 소용돌이치는 대자연의 에너지를 건져 올린 터너와 청색시대를 창안한 피카소 역시 분명한 자기세계를 가졌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네 번째는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다. 마그리트는 보는 이의 머릿속을 마구 뒤섞어놓고 새로운 충동을 일으키는, 새로운 아이디어로 명화를 남겼다. 늘어진 시계 등 작품으로 유명한 추상표현주의의 대가 달리는 모든 면에서 진정한 괴짜였던 까닭에 미술사를 새로 쓰게 하는 걸작을 남겼다. 팝아트의 선구자 앤디 워홀도 천재와 괴짜를 오가는 아이디어로 명작을 탄생시켰다.

다섯 번째는 오직 한 가지에 몰입하는 장인정신이다. 점을 찍어 대상을 그린 쇠라는 가장 작은 점으로 가장 큰 세상을 표현했고, 비운의 화가 모딜리아니는 연인의 초상화로 일생을 바쳤다. 루오는 힘 있는 한 줄의 선만으로 미술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으며, 몬드리안은 가장 단순한 직선과 원색으로 색면 구상을 창조했다. 가느다란 인물상을 조각한 자코메티도 외도를 하지 않았다.

교과서에 나오는 화가 50명의 명화들을 사례로 들며 전문가의 도움 없이 평범한 그림과 걸작을 판별하는 안목을 제시하는 이 책은 말미에 ‘추상화를 재미있게 감상하는 방법 7가지’를 팁으로 제공한다. 먼저 긴장을 풀고, “재미있다”고 반복적으로 말해본다, 의성어와 의태어를 사용해 다른 사람에게 그림에 대해 설명해본다, 그림에 제목을 붙여본다, 난해함을 즐기며 세부적인 것에서부터 시작해 시선을 뻗어나간다, 시 콜라주 복제화 등을 통해 추상화의 맛을 체험한다, 현대미술에 대한 혜안과 통찰을 담은 책을 활용한다 등이다.

미술사 전반을 아우르며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저자는 y=f(x)의 함수처럼 x의 값에 따라 그림은 명작이 되기도 하고 졸작이 되기도 한다고 강조한다. y의 값이 커지는 변수는 다섯 가지 x의 값에 달렸다는 것이다. 명화를 해석하는 방식이 비유적이면서도 쉬운 편이지만 책에 소개되는 명화들이 대부분 흑백 사진이어서 아쉽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