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 지역 초등생 4명이 겪는 성장기… ‘오늘의 날씨는’

입력 2010-10-21 18:09


오늘의 날씨는/글 이현·그림 김홍모/창비

서울 변두리의 산 아래 오래된 동네. 재개발 바람으로 위기에 처한 이 곳을 배경으로 초등학교 5∼6학년 네 아이(동희, 종호, 영은, 정아)가 겪는 성장기가 아릿하게 펼쳐진다.

책은 4편의 연작으로 구성됐는데, 아이들이 가을부터 이듬해 여름까지 겪는 일이 개별적이면서도 유기적으로 엮여있다.

네 아이들의 삶은 녹록치 않다. 계층 갈등과 부동산 개발 광풍, 외국인 노동자 차별 같은 문제들이 아이들을 갈대처럼 흔든다.

동희는 같은 반 친구의 명품 시계를 잃어버린 뒤 도둑 취급을 받고(햇빛 쏟아지는 날), 종호는 불법체류 노동자 키론 형을 좋아하면서도 표현하지 못한다(모두가 하얀 날).

영은은 교실 안 권력에서 밀려날까봐 고급 아파트에서 살기를 고집하고(계절이 바뀔 때), 정아는 재개발로 결혼을 꿈꾼 옆집 오빠와 이별의 아픔을 겪는다(비 온 뒤 갬).

아이들이 헤어나올 수 없는 현실은 아프지만 내용은 무겁거나 칙칙하지 않다. 2006년 동화집 ‘짜장면 불어요!’로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창작 부문에서 공동 대상을 수상한 작가가 특유의 익살맞고 생기발랄한 입담으로 시종일관 유쾌한 분위기를 이끈다.

“아니지, 눈물 바람으로 이별하는 건 황정아 답지 않은 일이지. 그냥 조금, 멀어지는 것뿐인데, 잠시 떨어져 지내는 것뿐인데, 뭐. 나는 콧물을 훌쩍 들이켜고 트럭 옆구리를 탕 치며 소리쳤다. ‘출발!’”(198쪽)

이야기 속 결정적인 순간이 나올 때마다 날씨가 수상하다.

종호는 영화배우 장동건을 닮은 방글라데시 출신 키론 형을 잡으러 단속반이 들이닥치자 실직자인 아빠가 신고했을까봐 안절부절 못한다. 알고 보니 키론 형이 다니던 공장의 사장이 퇴직금을 안주려고 신고를 했다. 잔뜩 걱정했던 종호는 이 사실을 전해 듣고 “온몸이 후끈거릴 정도로” 펑펑 운다. 때 마침 첫눈이 내린다. 혹독한 세상은 잠시 하얀 눈 속에 잠긴다. 예측하기 힘든 날씨에 빗대어진 아이들의 성장이 그만큼 짜릿하고 단단하다.

김상기 기자 kitt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