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정의 사진] 폰카 전성시대

입력 2010-10-21 18:02


지방 특산물 축제의 꽃은 늘 인삼아가씨, 고추아가씨 등 미인선발대회였다. 그러나 미인대회가 흔해진 탓일까, 아니면 여전히 미인은 찾기 힘들어서일까. 이제는 미인대회와는 별도로 보다 ‘친서민’적인 부대행사가 유행이다. 바로 폰카 콘테스트. 누구나 행사와 관련된 사진을 핸드폰카메라로 찍기만 하면 응모할 수 있다. 카메라가 달린 핸드폰만 있으면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싸고 무거운 장비를 갖춘 이들만을 겨냥하던 기존 사진공모전의 엄숙주의를 무너뜨린 셈이다.

지난 한 해 전 세계적으로 무려 8억대의 핸드폰카메라가 팔렸다. 폰카의 원조는 유명한 소프트웨어 개발자인 필립 칸이었다. 1997년 그는 핸드폰카메라의 가능성을 열어 보이기 위해 자신의 핸드폰에 미니어처 카메라를 장착한 뒤, 딸의 출산 장면을 전 세계 2000명의 지인들에게 보내는 데 성공했다. 세계 최초의 폰카 사진 출현 후 불과 13년이 지난 지금 스마트폰 등장과 맞물려 폰카 사진은 다양한 형태로 우리 삶의 축을 흔들고 있다.

아부그라이브 포로수용소에서 벌어진 미군의 이라크인 포로 학대 사진이며, 동영상으로 유포된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의 처형 장면 등은 모두 폰카를 통해 공개됐다. 인터넷과 트위터가 선거 문화를 바꾼 것처럼 폰카는 심지어 전쟁의 양상을 바꾸기도 한다. 지난해 AP통신사의 사진기자 나세르 시유키가 찍은 팔레스타인 시민의 장례식 사진은 대표적이다.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군의 공격을 받고 사망한 희생자의 주검 앞에서 사람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울거나 분노하지 않는다. 나세르가 찍은 사진 속에는 오직 주검과 그 주검의 얼굴을 찍고 있는 핸드폰들만이 등장한다. 이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핸드폰을 타고 분노와 갈등이 어떻게 전파되고 있는지, 왜 팔레스타인 사태가 쉽게 종결될 수 없는지에 대한 시각적 충격을 받기에 충분하다. 비록 해상도가 낮고 감각적이지 못할지라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폰카 속 주검을 통해 훨씬 더 강한 리얼리티를 느낀다.

일반인들의 폰카 특종을 어떻게 흡수할 수 있을지에 대한 전 세계 미디어들의 고민에도 불구하고, 일상 속 폰카는 우리에게 일종의 토이카메라다. 핸드폰의 사진 폴더만 열어보면, 핸드폰 주인이 갔던 곳, 만난 사람, 하루의 식단까지 모두 알 수 있는 블랙박스인 셈이다. 그리고 그 극단의 지점에 셀카가 있다.

본래 카메라는 초상화를 좀 더 수월하게 그리려는 요구의 산물이었다. 프랑스혁명과 산업혁명의 여파로 대두된 중산층은 너도나도 특권층의 전유물이던 초상화를 갖고 싶어했고,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지경에 이르자 ‘빛으로 얼굴을 그려내는’ 기계장치의 발명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그러나 초창기 초상사진은 지금처럼 대량 복제가 불가능했기에 오히려 초상화보다 더 비싼 가격에 거래됐다. 그 시절에는 지금의 ‘셀카 문화’를 짐작이나 했을까.

전쟁사진의 대가 로버트 카파는 ‘당신이 찍은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충분히 다가가지 않았기 때문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비약이지만, 폰카의 시대에는 이 거리가 너무 좁혀져 버렸다. 셀카를 찍을 때 카메라를 쥔 손과 우리 얼굴과의 거리는 보통 70㎝ 정도. 그렇게 해서 찍은 사진에는 배경도 없고, 세계도 없고, 오직 고립된 자신의 얼짱각도만이 남아 있다.

손수정 <포토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