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과 협상해보니… 선주 안현수씨 증언 “금미호는 ‘빈 지갑’… 협상 누가 하나”

입력 2010-10-21 18:11

소말리아에 관해선 누구보다 많이 안다면서 모두가 그를 지목했다. 예멘에서 수산업체를 운영하는 선주(船主) 안현수(53)씨는 해적이 출몰할 때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했다. 2006년 동원호 피랍 당시 협상에 참여했고, 이듬해 자신의 마부노 1·2호가 피랍되자 다시 협상 최전선에 섰다. 수소문 끝에 20일 부산에서 그를 만났다.

31만t 원유 운반선 vs 241t 어선

금미305호는 첫 사례다. 그동안 나포된 배들은 큰 상선이거나 원양어선이었다. 영세한 업체의 낡고 작은 배(241t)가 납치되긴 처음이다. 안씨는 “금미호 잘 알죠. 선주 김씨와도 가깝습니다. 그 사람 돈 한 푼 없습니다. 대리점주가 배 주인이 돼 있을 정도에요. 선주가 직접 배를 타다 납치될 정도라면 정말 (재정적으로) 갈 데까지 간 상황이라고 봐야죠”라고 했다.

항구에는 선박들의 입출항을 돕는 에이전시들이 있다. 배에 필요한 식자재를 대주고 선원도 모집해준다. 금미호 선주는 이런 대리점 중 한 곳에 빚을 많이 졌다. 외상값이 배 값을 넘어서 대리점주가 배 주인 노릇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금미호도 억류가 장기화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선주가 돈이 없고, 그나마 그 선주마저 잡혀간 상황이죠. 대리점주도 배 값보다 받을 빚이 더 많은데 몸값을 대줄 이유가 있겠어요. 대리점주도 곤란할 겁니다.”

해적은 아직 대리점주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안씨는 “아마 잡혀있는 선장이 ‘내가 선주다. 나 돈 없으니 맘대로 하라’고 버티고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케냐 선원들이 풀려나려고 대리점주를 댈 겁니다. 케냐 선원들은 대리점주가 모집한 애들이거든요. 대리점주에게 곧 연락이 올 겁니다”라고 말했다.

-연락이 와도 돈이 없는데, 협상할 수 있을까요.

“그 배에 잡아둔 물고기 40t이 실려 있어요. 헐값에 팔아도 23만 달러 정도는 나올 겁니다. 그거 주고 풀려나는 것 외에는 방법

이 없어 보이는데요.”

아직 협상을 시작도 못한 금미호와 달리 삼호드림호는 200일이 넘는 협상 기간에 몸값이 높아질 대로 높아져 있다. 안씨는 삼호드림호 억류가 장기화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다고 했다. 정부가 나서지 않았다거나 회사가 협상에 소극적이라거나 하는 것과 무관한.

“해적이 2000만 달러 요구한다는데, 삼호드림호(31만9360t) 같은 규모의 유조선이라면 보험으로 커버가 될 겁니다. 모르긴 해도 배 값이 몇 억 달러는 할 테니까. 그런데 해적이 그런 거액을 부르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어요. 해적들에게도 돈을 대는 물주가 있습니다. 하청업자처럼 무기 대여해주는 사람, 식량·차량 공급해주는 업자 등도 달라붙어 있어요. 드림호 같은 큰 배를 잡아오면 그런 기생업자들이 잔뜩 기대를 걸고 달려들어요. 그들은 오래 잡아둘수록 더 많은 돈을 벌게 됩니다. 그래서 계속 장기 억류를 부추기고, 더 많은 몸값을 요구하게 만들어요.”

안씨는 드림호 협상에 관여하지 않고 있다. “해적들과 선이 닿긴 하지만 협상 창구를 일원화해야 하기 때문에 일절 연락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협상은 어떻게 될까요.

“결국 돈이 해결할 겁니다. 해적 구성원을 파악해 인간적으로 설득하는 수밖에 없어요. 그런 면에서 드림호는 불리하죠. 동원호, 마부노호 땐 ‘회사가 어렵다. 수산업이 불황이고 기름값도 올랐다’는 식으로 꾸준히 설득했어요. 마부노호 협상에선 해적 측 통역의 부인을 비밀리에 두바이로 불러 병원 치료도 시켜줬어요.”

해적 검문, 왜 못하나

소말리아 해적을 잡자고 국제사회가 분주하다. 바레인에 연합해군사령부(CMF)가 설치됐고 24개국이 군대를 파견했다. 하지만 안씨는 이들에게 기대할 게 없다고 했다.

“국제법 때문에 해적을 잡아도 총만 빼앗고 돌려보내요. 해적놈들이 저한테 전화해서 그럽디다. ‘겁먹을 필요 없다. 잡히면 오히려 물도 주고 식량도 준다. 맘대로 나가도 된다’고. 해적 1명만 사살해보세요. 바로 마을에 소문이 쫙 돕니다. 겁나서 바다로 못 나와요.”

과격하게 들리지만 그는 직접 해적 피해를 입은 선주다. “해적한테 당한 입장에선 (연합군 행태에) 환장할 노릇”이라고 했다.

-해적과 민간인 구별이 어려워서 소탕하기가 쉽지 않다는 말도 있던데요.

안씨는 소말리아 지도를 폈다. 하라데레, 호비오, 에이레. 소말리아 동부해안의 세 도시를 가리켰다.

“해적은 이 세 지역에서 출항합니다. 경비정 두어 척 보내 세 지역에서 나오는 배를 검문하면 됩니다. 지금처럼 큰 군함 보낼 필요도 없어요. 소말리아 과도정부와 어촌 추장 만나서 담판을 지어야죠.”

과도정부는 주민들한테 ‘해안에서 12해리 밖으로 나가는 배는 안전보장 못 한다’ 공표케 하고, 어촌 추장들에겐 ‘해적질 안 해도 먹고 살게 지원하겠다’ 약속한 뒤, 세 도시에서 나오는 배를 연합군이 검문하면 해적이 사라질 거란 얘기다.

안씨는 “지금 연합군 군함 21척이 쓰는 경비의 10분의 1만 갖고도 할 수 있는, 이런 해결책을 과도정부도 알고 있다. 그런데 실행하지 않는 걸 보면 해적과 정부 인사들이 연결돼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현재로선 예방이 최선인데, 피랍될 경우 구출작전은 가능할까. 동원호, 마부노호 피랍 선원들은 구출이 시도될 때마다 해적들이 자신들을 총알받이로 내세웠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해적들은 대단한 놈들이 아닙니다. 동네 불량배 수준이에요. 열한 살, 열세 살짜리도 있습니다. 배 안으로 가스총 쏴서 모두 재워버려 진압에 성공한 사례도 있고요. 금미호 같은 작은 배는 밖에서 보면 해적들이 어디 서 있는지 다 보여요. 저격하면 됩니다. 그게 힘들면 배 밑바닥에 접근해 구멍 뚫으면 됩니다. 배가 가라앉으면 해적도 살려고 기어 나오지 않겠습니까. 금미호는 너무 낡아서 내버려도 되는 배예요.”

안씨는 소말리아 해적이 과대포장돼 있다고 주장했다.

“해적들이 첨단 무기가 어딨습니까. 내비게이션 들고 다니는 걸 갖고 GPS 첨단무기라고 언론이 포장합니다. 너무 현실을 몰라요. 프랑스는 두 번 구출작전해서 모두 성공했어요. 돈 가방에 센서 달아서 인질이 풀려난 뒤 쫓아가 몰살시킨 적도 있죠. 우리 정부는 그런 위험을 떠안기 싫어하는 것 아닙니까.”

부산=김원철 기자 won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