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섬’ 1권 펴낸 이재언씨 “죽을 뻔도 했죠… 그래도 우리 섬, 누군가는 기록해야죠”

입력 2010-10-21 18:11


20여년간 전국의 크고 작은 556개 섬을 찾아다니며 섬의 모든 것을 일일이 기록한 사람이 있다. 자칭 ‘섬 탐험 전문가’ 이재언(58)씨다. 최근 전남 여수 근처 유·무인도 54개를 ‘한국의 섬’(아름다운사람들)이란 제목으로 펴낸 그를 18일 전화로 만났다. 그는 섬을 일주한 일에 대해 “내가 똑똑한 사람이었다면 시도하지 못했을 미친 짓”이라고 말했다. 책을 펴낸 일에 대해서는 “개발논리에 밀려 고유의 모습을 잃어가는 우리 섬을 누군가는 기록해야 하지 않겠어요?”라고 반문했다.

완도에 딸린 노화도에서 태어난 이씨는 본래 섬을 좋아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를 따라 목포를 다녀온 뒤로 ‘도시앓이’를 했다. 전깃불과 기차, 자동차, 간판, 세련된 옷차림 등 도시의 것들이 뇌리를 맴돌았다. 중학교 1학년을 마치고 무작정 서울로 내뺐다. 구두를 닦고 신문을 배달했고, 막장에 들어가 곡괭이질을 했다. 하지만 “섬 촌놈”이라며 놀리는 육지 사람들의 차별은 그의 마음속에 섬에 대한 그리움을 키웠다. 갖은 역경을 딛고 이씨는 신학대학과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목사가 됐다. 1989년 고향으로 내려와 목회 일을 시작하고 인근 섬으로 선교를 다니면서 섬을 기록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휩싸였다.

“철없을 적에는 무작정 도시가 좋더니 어른이 돼서야 섬의 진짜 아름다움이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 섬에 사는 사람들은 너무 안돼 보였어요. 섬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낙후된 곳에서 사는지 모른 채 살다 갑니다. 섬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 섬의 모든 것을 기록하려고 노력했죠.”

이씨는 92∼95년 1.5t짜리 ‘등대호’를 몰고 진도 근처 조도를 시작으로 전국 440여개 섬을 돌았다.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겼다. 목포 근처 무안 복길항에서는 배가 침몰했다. 조난을 당해 해경에게 구조된 것도 여러 번이었다.

여행정보를 중심으로 섬 관련 책을 냈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섬의 고유한 문화와 역사와 풍습 등을 망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4년부터 다시 3년 동안 배를 몰고 전국 556개 섬을 답사했다. 이번엔 후원을 받아 등대호 크기가 4.67t으로 커졌는데 열정이 함께 부풀었다.

책에는 섬마다의 고유한 풍습이나 풍경, 특산물 등에 대한 풍부한 정보와 사진으로 가득하다. 또 좁다란 골목길이 어느 방향으로 나있는지에서부터 지역 인심이나 빈집 현황까지 섬 주민이 아니고는 알기 힘든 정보들이 빼곡하다. 교통편과 관광명소 등이 포함돼 있어 여행 길라잡이로 손색이 없다. 그는 이번에 여수 근처 섬들만 묶었지만 그가 돌아다닌 섬 모두를 시리즈(총 10권)로 펴낼 계획이다.

이씨는 “일본은 정부와 민간단체가 똘똘 뭉쳐 섬을 자연 그대로 보존하려고 노력하는데 우리 정부는 섬을 지나치게 홀대하거나 다리를 놓아 육지로 만들 생각만 한다”며 “나의 작은 노력이 우리 섬을 지키는 데 보탬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상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