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리함을 택하고, 우리가 잃은 것들… ‘옛 것에 대한 그리움’

입력 2010-10-21 18:11


옛 것에 대한 그리움/김종태/휘닉스

‘고된 시집살이로 파김치가 된 며느리에게 시어머니가 저녁 지을 쌀 한 되를 내주며 뉘(등겨가 벗겨지지 않은 채로 섞인 벼 알갱이) 한 주먹을 섞어 준다. 며느리는 고단한 몸으로 일부러 섞은 뉘를 하나하나 골라낸다.’

일이 끊이지 않던 우리 어머니들 시대의 이야기 한 자락인데 언뜻 며느리를 골통 먹이려는 시어머니의 심술이 떠올려 질 게다. 뉘를 고르는 일이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인 일처럼 보이지만 아니다. 뉘를 고르는 일은 티 안 나게 챙겨주는 일종의 쉬는 시간이었다. 그 일이 없었다면 며느리는 다른 더 고된 일을 해야 했을 거다. 그게 그 당시 보통 여인네들의 시집살이였다.

야생화를 널리 알리는데 평생을 바친 김종태(57) 시인이 우리 옛 것들의 아름다움과 정취를 책으로 엮었다. 한국 최초이자 유일한 계간 장애인 문학지인 ‘솟대문학’의 편집장이기도 한 저자는 5부에 걸쳐 83편의 옛 것에 대한 추억을 펼쳐 놓는다. 옛 것의 모습과 쓰임새는 물론 조상들의 풍습과 지혜를 함께 담았는데 시를 쓰듯 유려한 문장이 돋보인다.

‘정말 첫사랑이 생기는 걸까?’라는 부제가 달린 봉숭아편은 이렇다.

“봉숭아물이 첫눈 올 때까지 남아있으면 첫사랑이 생긴다는 아름다운 미신을 믿고 가슴 설레던 우리의 할머니 어머니 누이들이 그립다. 그들의 고운 꿈이 그들이 꾸었던 꿈보다 아름답다. 그래서 사랑도 다른가보다. 고생을 하고 하룻밤이 지나야만 물이 드는 봉숭아물. 그러나 그 물은 시간이 지나가야지만 지울 수 있는 것이다. 매니큐어는 어떤가? 칠하고 싶을 때 아무 때나 칠하면 된다. 지우고 싶을 때 지우면 감쪽같다. 색깔도 다양하다. 꼭 현대인의 마음 같다.”(23쪽)

저자의 문장력은 정평이 나있다. 야생화를 읊은 그의 시 ‘잡초는’은 월간조선이 선정한 한국명사 100인이 뽑은 명문장에 수록됐다.

호롱불편에서는 사색이 더 깊어진다. 하찮다고 치부했던 것들이 김 시인의 손을 거치니 새로운 생명력을 얻는다. 옛 것을 들어 지금 것을 비판하는 방식도 절묘하다.

“호롱불은 꼭 그림자가 사방에 생겼다. 아이들은 손가락을 이용해 벽에 개, 여우, 나비, 도깨비, 주전자 등의 그림자를 만들어 놀았다. 지금은 간접조명에 삼파장 스탠드가 방마다 밝혀주는 그림자가 없는 시대이다. 그림자란 무엇인가. 밝은 빛을 가로막는 자신의 모습이다. 자기 자신을 늘 돌이켜 보아 갈고 닦던 옛 어른들의 지혜가 그립다. 너무 밝고 많은 빛은 그림자를 잡아먹는가? 어둠과 그림자와 빛의 의미를 모르는 신세대들이 생기지나 않을까 걱정스럽다.”(31쪽)

각 물건에 얽힌 옛 이야기는 우리 조상들의 삶의 자세를 엿보게 한다. 각종 사료와 해박한 우리 문화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생생하게 묘사한 우리 옛 물건들이 정겹게 느껴진다.

지금이야 하찮은 물건 취급을 받지만 빗은 원래 관련 규범이 엄격했다. 빗을 잃어버리면 정조를 포기한 것으로 여겼고, 빗을 건네주면 혼인을 허락한 것으로 볼 정도였다. “유월 보름에/아으, 낭떠러지에 벼린 빗 같구나/돌아보실 임을 자꾸만 좇아갑니다” 저자는 고려가요 ‘동동’을 예로 든다.

옛날 여인들은 남에게 맨발을 보이는 것을 큰 수치로 알아 아내는 남편 앞에서도 버선을 벗지 않았다. 버선은 사랑의 묘약으로도 쓰였다. 상사병을 앓는 사람에게는 상대의 버선 뒤꿈치를 잘라 불에 태워 술을 타 먹이는 풍습도 있었다. 며느리는 동짓날에 시부모에게 새 버선을 지어 바쳤다.

옛 것에서 조상들의 숨은 지혜를 발견하고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이해하는 단초로 제시하는 대목들도 읽는 재미를 더한다.

“이규태(1933∼2006)씨는 제주도의 아기구덕을 제외하고는 요람이 없는 민족은 우리 겨레뿐이란다. 우리나라 여성들은 아기를 자기 몸과 떨어뜨려 키운다는 것을 꿈도 꾸지 못했다. 한국인은 어머니의 체온을 세계에서 가장 오래 느끼고 자란 민족이다. 우리는 모두 처네 속에서 자랐고 어머니 치마폭을 잡고 컸다. 태어나서 두 살까지의 뇌의 발달량은 두 살에서 스무 살까지의 뇌의 발달량과 같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감성이 유난히 발달한 것은 다 이유가 있다.”(53∼54쪽, 처네편)

저자는 문명의 변화에는 전제 조건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첫째는 가치가 검증돼야 하고 둘째는 인간 위주의 변화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 한국인들이 지나온 변화에는 이 같은 전제조건이 충족되지 못했다. 그는 서문에서 “우리는 후진국이란 딱지가 싫어서 무조건 외국의 변화를 눈감고 좇아 왔다”며 “세계에 내놓고 자랑할 만한 우리 문화유산도 비합리적, 비생산적, 비효율적이란 누명을 씌워 파괴해 버리고 신사대주의를 따랐다”고 비판한다.

저자가 풀어놓은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편리함을 추구하는 사이 정작 우리가 지켜야할 소중한 것들까지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자문을 하게 된다. 매연 가득한 도시에서 시멘트 바른 아파트에 사는 일이 풀내음 가득한 자연에서 흙벽 온돌로 된 한옥에서 사는 일보다 과연 행복한 것일까.

김상기 기자 kitt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