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G20 정상회의 D-21] “G20은 한 배를 탄 운명… 환율전쟁 벌일 상황 아니다”

입력 2010-10-20 21:22


(10·끝) 사공일 준비위원장 인터뷰

대담=배병우 경제부장


19일 서울 삼청동 금융연수원에서 만난 사공일(70)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준비위원장의 목소리는 잠겨 있었다. 20여일밖에 남지 않은 회의를 앞두고 연일 강행군으로 감기가 잘 낫지 않는다고 했다.

최근 세계 경제의 최대 이슈로 부상한 환율에 대해서는 “환율전쟁이란 표현은 과장됐고, 격렬한 논의가 있는 것”이라며 “각국이 한 배에 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환율)전쟁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또 “이럴수록 G20 같은 국제경제협의체의 역할이 중요한 만큼 세계 전체로 봐서 G20이 있는 것이 다행”이라고 강조했다.

우리나라가 의제로 제안한 소위 ‘코리아 이니셔티브’에 대해서는 비(非) G20국들로부터 상당히 호평 받고 있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사공 위원장은 인터뷰 중 G20 체제의 역할과 장래를 낙관하면서도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국민에게 하는 말임과 동시에 어려운 소임을 앞두고 마음속의 용기와 의지를 불러내는 자기다짐으로 들렸다.

-서울 G20 정상회의 주요 의제 중 최근에는 글로벌 불균형(global imbalance·미국의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와 중국 등 신흥국들의 경상수지 흑자로 대비되는 지역 간 불균형 현상) 해소가 전면에 부각되는 것 같다. 특히 그 중에서도 환율 문제로 관심이 쏠리고 있다.

“글로벌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미국 피츠버그 정상회의에서 합의한 게 ‘강하고 지속가능하며 균형 된 성장’이라는 원칙이다.

각국이 이를 위해 바람직한 정책대안을 IMF에 제출했고, IMF는 이들 대안에 대한 상호평가 기준 등을 마련했다. 서울 정상회의에서도 글로벌 불균형을 위한 다양한 정책수단이 당연히 논의되며, 그 안에 환율도 포함된다. 하지만 환율은 하나의 정책 변수이지 전부는 아니다. 의제 정리를 위한 논의가 아직 진행 중이고 이번 주말 경주서 열리는 G20 재무장관 중앙은행 총재회의에서 결과가 나와야 한다.”

-우리 정부로서는 환율 문제가 이처럼 부각되는 게 당혹스러울 수도 있을 것 같다.

“환율 문제는 각 나라의 경제, 정치적인 측면에서 봐야 한다. 미국은 높은 실업률 등 경기가 상당히 침체돼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다음 달 중간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압력이 심하다. 또 세계경제도 아직 강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 않다. 이러한 이유들로 환율 문제가 더욱 부각되고 있다고 본다. 하지만 환율전쟁이라는 말은 너무 과장된 말이다. 전쟁이 아닌 격렬한 논의로 봐야 한다. 한 배를 타고 있는데 서로 격돌할 수는 없는 형편이다.

다만 위험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G20이 더욱 중요하다. 이런 시기에 G20이 있다는 것은 세계경제로 봐서 퍽 다행스런 일이다. 1930년대에는 국제공조가 이뤄지지 않아 대공황을 맞은 것이다. 이번 정상회의에서는 G20 모두 국제공조가 계속돼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기 때문에 환율과 관련된 논의의 타협점을 찾는 데 한국이 의장국으로서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글로벌 금융안전망 구축과 개발 의제 등 우리나라가 주도하는 ‘코리아 이니셔티브’가 이번 회의에서 어느 정도 합의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하나.

“지난 8월 말 IMF의 위기 예방적 차원의 대출제도 개선안이 글로벌 금융안전망의 1단계 조치다. IMF가 발표 당시 한국이 주도한 개선안이라는 문구를 집어넣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2단계는 현재 논의 중에 있으며, 서울 정상회의에서 어느 정도 가시적인 성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경제개발 문제는 개발도상국의 경제개발 능력을 배양하는 쪽에 맞추어져 있다. ‘고기를 나누어 주는 것보다 고기 잡는 법’에 초점이 있는 것이다.

현재 192개 유엔 가입국 중 173개국이 비G20 회원국인데 이들 중 대부분이 개발도상국, 신흥국이다. 모두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으며 이번 정상회의에서 결실을 맺고 이후 이들 의제가 ‘코리아 이니셔티브’로 불리게 되길 기대한다.”

-G20 회의가 확고한 국제경제 협의기구로서 자리매김하지 못하고 상징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는 회의론도 있다.

“G20은 지구촌에서 유지 역할을 하는 나라들의 모임으로 봐야 한다. 1970년대 중반 이후 G7이 그 역을 맡았다. 하지만 90년대 이후 특히 2000년대 들어와서는 G7은 소위 세계경제 비공식 운영위원회로서 역할을 제대로 못해왔다. 거의 말잔치로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2008년 국제 금융경제 위기 이후 G20체제가 출범했는데, 지금까지 성공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위기 대응책을 협의해 합의를 이끌어냈고 실천이 돼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G20이 위기에서 벗어나게 되면 단합된 모습을 보여주기 힘들 것이란 회의론도 내놓고 있다. 한마디로 서울 정상회의는 향후 G20의 미래에 대한 ‘리트머스 테스트’다. 때문에 서울 정상회의를 반드시 성공시켜서 위기 이후에도 G20이 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만 G20이 유명무실해지지 않고 국제경제협력에 관한 최상위 포럼으로 계속 운영되는 ‘제도화’가 가능하게 된다.”

-서울 정상회의의 막판 의제 조율에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

“부여된 과제들은 어느 하나 쉬운 게 없다. 지난 토론토 정상회의의 선언문을 보면 ‘서울에서’ 또는 ‘서울까지’ 결정하거나 보고되어야 한다는 표현이 9차례 나온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IMF 지분(쿼터) 이전 같은 문제가 대표적이다. 지난 3차 피츠버그 정상회의에서 총론적인 부분에서는 과대대표된 국가에서 과소대표된 국가로 지분의 5%를 이전하자는 정상 간 합의를 이뤘지만 구체적으로 실행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선뜻 지분을 내놓겠다고 나서는 국가가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국가별 경제 상황이 다르고 또 이해관계가 달라서 의제마다 합의하고 조율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이번 회의를 준비하면서 우리나라의 위상이 높아졌음을 몸소 체험하셨을 것 같은데.

“앞서도 말했듯이 G20은 지구촌 유지격 모임이다. 동네 유지모임에 한국이 일원으로 참여하게 된 것뿐 아니라 좌장이 돼 마을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새로운 질서를 짜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토론토 G20 정상회의에서는 이명박 대통령만이 세 번에 걸친 지정토론을 했다. 주최국인 캐나다 수장이 개회사를 하고 이 대통령이 발언한 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후진타오 중국 국가 주석이 뒤따라 발언한 것은 한국의 위상을 반영한 사례다. 또한 준비위 차원에서도 세계은행(WB),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들의 적극적 협력도 이를 대변한다.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관계에서 협력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이번 회의가 끝나면 준비위원장으로의 소임도 마친다. 앞으로의 거취와 계획은.

“정부의 경제정책 관련 핵심부서에서 여러 가지 보람 있는 일을 해왔으나, 이번 G20 정상회의 준비위원장으로서 일한 것은 또 다른 차원의 큰 보람이 있는 일이었다. 이 일이 끝나면 물론 무역협회장으로서의 소임에 전념할 것이다. 아울러 G20과 세계경제 등에 관한 책을 쓰고 싶다.”

- 회의를 앞두고 국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이제 세계의 이목이 서울에 집중됐다. 이를 계기로 우리 문화와 역사를 전 세계에 제대로 알리고 우리 국민 모두의 선진화된 시민의식 수준을 보여줘 국격을 높이는 기회로 삼길 바란다. 특히 G20 서울 정상회의 다음날인 13일부터 일본 요코하마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린다. 두 회의에 모두 참석하는 국가는 한국을 비롯해 아홉 국가다.

서울을 떠나 요코하마로 가는 정상들과 수행원, 취재진이 우리와 일본인 간의 문화·역사 그리고 시민 의식수준을 비교할 수밖에 없게 된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남을 배려하고, 공동체 일원으로서 법과 질서를 준수하고, 친절하고 청결한 우리 국민들의 모습을 보여주면 된다.”

정리=김아진 기자 ahjin8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