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정원교] 진수희 복지부 장관에게 기대한다

입력 2010-10-20 17:44


“한국형 아메리코는 대학생들이 학자금을 마련하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될 것”

케이티는 생후 3개월 때인 1985년 미국으로 입양됐다. 지금은 연세대 대학원 보건학과 석사과정 학생이다. 지난해 8월 한국에서 공부하기 위해 서울로 왔다. 미국에서는 시카고 일리노이주립대(UIC)에서 운동생리학을 공부했다. 대학원에서 첫 학기를 시작하기 전 지난 여름까지 1년 동안 연세대 한국어학당에서 우리 말과 글을 배웠으나 아직 부족한 편이다.

그는 고교를 졸업한 뒤 지금까지 혼자 힘으로 학업을 계속하고 있다. 대다수 미국 학생들이 그러하듯. 그런 케이티에게 ‘아메리코(AmeriCorps, 미국봉사단)’는 참 좋은 제도였다. 이 프로그램에 참가해 봉사 활동을 하면서 학비도 벌 수 있었다. 아메리코는 말하자면 미국내 피스코(Peace Corps, 평화봉사단)에 해당된다. ‘국가 및 지역사회봉사단(Corporation for National and Community Service, CNCS)’이 이 프로그램을 주관한다. CNCS는 자원 봉사를 통해 시민 참여 의식을 높이기 위해 1993년 설립된 연방정부 산하 공공기관. CNCS가 운영하는 프로그램은 아메리코 말고도 더 있다.

케이티가 스무 살이던 2005년. 그는 휴학을 한 뒤 시카고를 떠나 로스앤젤레스에서 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산버나디노 산으로 갔다. 거기서 그는 국유림 관리를 맡았다. 아메리코를 통해서였다. 전기톱으로 거목을 자르고 임도(林道)를 만들고…. 아침 7시면 일어나 봉사자 20명이 함께 점호를 받고 아침 운동을 했다. 아침 식사 뒤 오전 8시면 작업에 들어가 오후 5시 일을 끝냈다. 그렇게 1주일에 40시간 일했다.

그제 취재차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물었다. 여자로서 힘에 부치지 않았느냐고. 그는 제복을 입은 규칙적인 생활이 군대와 비슷할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힘들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단다. 아담한 체구에 해맑은 표정인 그의 어디에 그 같은 강단이 숨어 있었을까. 산버나디노 산에서 6개월 동안 일한 뒤 장학금으로 3500달러를 받았다. 그동안 숙식을 제공받으면서 매월 1000달러를 별도로 수령했다. 그러나 그 돈으로는 학비에 못 미쳐 복학을 해서도 ‘알바’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비해 1년짜리 프로그램에 참가한 뒤 받는 장학금은 학자금으로 부족하지 않을 정도다.

“제 자신이 커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지 깨닫는 계기가 됐습니다. 정말 좋은 경험을 한 데다 보너스처럼 장학금을 받는 기분이었습니다.” 케이티는 학교에서 보다 산속에서 훨씬 소중한 그 무엇을 얻을 수 있었다고 했다. 아메리코를 통해 할 수 있는 봉사 활동은 이 밖에 환경보호, 에이즈 환자 도와주기, 노숙인에게 글 가르치기, 컴퓨터 교육, 집짓기, 공원 청소 등 다양하다.

정부가 대학생들의 등록금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내놓은 든든 학자금(취업후 학자금 상환제도)이 별로 환영을 못 받고 있다. 이 학자금을 대출받으면 재학 중에는 상환이 유예되지만 취업 후 대출금을 갚기 시작할 때는 이자가 복리로 붙기 때문이다. 정부는 친서민 정책의 하나로 이 학자금을 야심차게 제시했지만 당초 예상이 크게 빗나간 셈이다. 일반상환 학자금 대출도 있지만 이 역시 금리가 5%대여서 부담이 된다. 이처럼 학자금 대출만으로는 등록금 부담을 완화하기에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등록금 조달 통로를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 즉 자원 봉사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대학생에게 장학금 혜택을 주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아메리코를 벤치마킹할 만하다. 아메리코는 대학생들만 상대하는 게 아니라 18세 이상 모든 성인들을 대상으로 운영된다. 따라서 학자금 충당 수단만은 아니다. 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특징은 봉사료를 지급한다는 점이다. 마침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이 ‘한국형 아메리코’ 창설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진 장관이 이 일은 재임 중 꼭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니 기대가 된다. 보건사회연구원 등은 CNCS와 비슷한 조직을 설립하는 방안을 이미 마련한 적이 있다. 이러한 기구 출범을 통해 봉사 활동이 더욱 활성화되면 결과적으로 사회 통합에도 크게 도움되지 않겠는가.

정원교 편집국 부국장 wkc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