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헌신은 타이밍이다

입력 2010-10-20 17:48


요한복음 12장 1∼8절

복음서에는 예수님의 장사 지냄과 연관된 두 여인의 헌신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두 여인의 이름은 모두 마리아입니다. 한 사람은 나사로의 누이인 마리아입니다. 또 다른 사람은 지역의 이름과 연결하여 막달라 마리아라 불립니다. 두 사람 모두 예수님에게서 깊은 사랑과 은혜를 받았습니다.

본문을 보면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을 열심히 경청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어드리고 자신의 머리털로 그 발을 닦아드리고 있었습니다. 너무도 값진 향유이기에 온 집안에 향기가 퍼져나갔습니다. 함께한 사람들은 저마다 향기가 좋다며 마리아의 헌신을 부러운 듯 말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 역시 마리아의 이 행동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제자 중 한 사람인 가룟 유다가 마리아의 행동에 대해 비난의 말을 퍼부었습니다.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5절)

값이 제법 나갈 줄은 알았는데 삼백 데나리온이나 되는 줄은 몰랐습니다. 그런데 향유의 가격을 알고 있다는 듯 유다는 정확하게 말했습니다. 그만큼 한눈에 보기에도 값비싼 향유였던 겁니다. 그 향유를 왜 허비했느냐며 유다는 마리아를 비판했습니다.

마리아는 분명 기쁨으로, 사랑으로 자신이 아끼고 아끼던 향유를 부어드렸습니다. 그런데 유다가 마리아의 행동이 그릇된 것인 양 매도했습니다. 한 대 맞은 사람마냥 멍하니 서 있는 마리아를 바라보던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7절)

예수님은 분명하게 마리아의 행동이 자신의 장례와 연관된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을 보면 향유를 부은 마리아의 헌신을 기억하도록 말씀하셨습니다(막 14:9). 향유를 부어드린 마리아의 마음은 예수님의 장례와 연관된 헌신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의 장례를 위해 향유를 준비한 여인이 또 있었습니다(막 16:1).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그녀는 예수님의 시신에 발라드릴 목적으로 향유를 사서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가 준비한 향유는 예수님께 발라드릴 수 없었습니다. 무덤이 비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부활하셨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도 예수님에 대한 감사와 사랑으로 향유를 준비했습니다. 더구나 분명한 목적을 갖고 향유를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는 끝내 예수님께 향유를 발라드릴 수 없었습니다.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 두 여인 모두 예수님께 발라드릴 목적으로 향유를 갖고 왔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부어드렸고 막달라 마리아는 부어드릴 수 없었습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막달라 마리아에겐 부활에 대한 소망이 없었습니다. 새벽이슬을 밟으며 무덤을 향하는 그녀의 헌신 대상은 과거의 예수님이었습니다.

두 여인 모두 예수님의 장례와 연관된 향유를 손에 들고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께 부어드림으로써 모든 이에게 기억되는 헌신으로, 반면 막달라 마리아는 향유를 준비했으나 정작 부어드릴 수 없었던 헌신으로 기록됐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기억되는 헌신이란 ‘여기 계신 예수님’과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리아는 여기 우리와 함께 살아 숨쉬는 예수님에 대한 헌신으로 향유를 부었습니다. 반면 막달라 마리아는 죽은 예수님의 시신을 생각하고 추억 속의 예수님을 떠올리며 향유를 갖고 갔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사랑의 마음은 같다고 할 수 있겠지만 바라보는 관점이 이만큼 달랐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헌신은 과연 어떤 유형인지 되물어봐야 합니다.

박상돈 목사(즐거운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