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선 약사의 미아리 서신] 위태로운 개미취 꽃송이를 닮았던 집창촌 그녀

입력 2010-10-20 17:34


몸이 좀 찌뿌드드하여 어제는 가벼운 나들이를 하였습니다. 신선한 공기와 나무냄새의 유혹 끝에 제 발길이 다다른 곳은 북한산이었습니다. 백운대까지는 오를 수 없었지만 천천히 노래 몇 자락을 흥얼거리면서 넘어가는 길은 가벼웠습니다. 조금 오르다 보니 연보라색의 개미취 군락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우리나라 어느 산길이나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개미취는 소박한 들꽃입니다. 아주 작은 꽃송이가 기다란 줄기 끝에 위태롭게 달려 있는 꽃의 모습은 애처로워 보이기까지 합니다. 제가 잠시 알았던, 지금은 여기에 없는 한 여인이 유난히 생각나는 이유는 그녀의 애처로움이 꽃의 그것과 많이 닮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녀를 처음 만난 때는 5년 전 초봄이었습니다. 연보랏빛 드레스를 입고 폴짝폴짝 뛰어와서는 “약사 이모, 피임약 하나만 주세요” 하며 해맑게 웃었습니다. 집창촌에서 입는 드레스를 갈아입지도 않고 그냥 입고 나온 그녀는 꽤 바빠 보였습니다. “잊어 먹었어요, 약 먹는 일을. 휴∼우 큰일 날 뻔했네.” 그렇게 그녀와의 인연은 시작되었습니다.

약국 근처에 있는 성매매업소에서 일하던 그녀는 하루가 멀다 하고 약국에 왔으며 약을 사가는 날 보다는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가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그녀는 세상 모든 것에 대하여 궁금해 하였습니다. 보육원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녀는 그저 사회 속에 나와서 살고 싶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바다처럼 넓은 세상에서 훨훨 갈매기처럼 자유롭게 날고 싶었노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다가 한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알콩달콩 살림을 시작하였고 그때는 정말 행복하였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하였습니다.

이제 자기는 돈을 벌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예쁜 딸아이를 낳았고 고아였던 그녀에게는 세상에서 유일한 핏줄이며 살아가는 의미였던 그 아이를 볼 수 없는 삶은 상상할 수조차도 없는 일이었노라고 그녀는 이야기했습니다. 가정불화로 인해 이혼을 결심하였으나 딸아이 양육문제는 그녀의 몫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딸아이를 키우고 싶었던 그녀는 전문가와 상담을 하니 학력도, 경제적 능력도, 변변한 직업도 없어 양육권 소송에서 이기는 일은 불가능했습니다. 약간의 재산이 있어야 그나마 가능하다는 이야기만을 들었습니다. 그녀의 선택이 ‘미아리텍사스’였다는 사실이 가슴 아팠으나 어쩔 수 없었노라고 어렵게 이야기했습니다. 그 누구에게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었던 그녀를 보면서 제가 마음이 먹먹해 왔던 이유는 그런 그녀가 세상을 원망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을 낳았고, 잘 키우고 공부도 잘 시켜서 보란 듯이 세상에 내놓아야 하는 얼굴조차 모르는 부모에게조차도 원망이 없던 그녀였습니다.

제가 틀어 놓은 복음성가를 들으면서 “이 노래가 참 좋다 근데 괜스레 눈물이 나네요” 하던 그녀는 돈을 많이 벌어 이곳을 떠나게 되면 교회를 다녀야겠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였지요. 자신은 많은 죄를 지었으니까 교회에 나가 하나님을 만나서 이 죄를 다 용서받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3월의 어느 주일이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점심식사를 하려고 하는데 교회 마당에 모여 있는 식구들이 웅성거려 나가 보니 저희 약국이 있는 골목에서 희뿌연 연기가 올라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건물에 불이 난 것 같다며 수군대는 사람들 이야기를 뒤로 하고 약국 쪽으로 달려갔습니다.

불이 난 건물은 제 약국 건물 바로 앞에 있는 성매매업소 건물이었습니다. 보랏빛 꽃을 닮은 그녀가 일하는 가게였습니다. 순간 가슴이 철렁하였고 윙윙 울어대는 소방차 소리는 귓가에 맴돌았고 정신이 혼미해 졌습니다. 급수차를 동원한 화재진압은 수 분 만에 이루어졌습니다. 그녀가 살아 있을 거라 믿었습니다. 연기가 나온 지 채 10분도 안 돼서 불을 껐고 계속 뿌려대는 물로 골목 앞은 작은 개울을 이루게 되었지요.

더 많은 급수차와 소방대원이 출동하였고 불씨는 다 꺼졌다고 그런데 사람이 몇 명 죽은 거 같다는 소방대원 아저씨들의 이야기가 들려왔습니다. 약국에 앉아 지켜보던 저는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화재 장소가 정리되고 서너 시간 뒤에 불에 탄 시신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거기에 그녀가 있었습니다.

저에게 교회를 다니고 싶다고 고백한 그녀가 하나님 나라에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나중에 그녀를 만나면 안아주고 싶습니다. 그녀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딸아이도 하나님 나라에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미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