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복·혼란·분쟁의 땅’ 필리핀 민다나오 까방나산… 희망이 열매 맺다

입력 2010-10-20 18:04


기아대책과 함께하는 회복

필리핀 민다나오섬 안에서도 권귀동(47·기아대책 봉사단) 선교사의 사역지인 부키드논의 까방나산까지의 도정은 험난함 그자체였다. 반군지역이라 민간인이 들어가기도 힘들었다. 세인트버나드에서 새벽 3시에 승용차로 출발해 두 번 비행기를 갈아타고도 모자라 비포장도로를 다시 승용차로 5시간 정도 달려야 했다. 전기도 없는 깜깜한 산길을 달려 까방나산의 세계비전센터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8시.

필리핀에서의 마지막 취재지인 이곳에 도착할 즈음 내 몸은 정상이 아니었다. 열과 함께 툭 건들면 그대로 주저앉을 만큼 비틀거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계속 해열제를 먹으며 견디고 있었지만 그 길을 가슴에 담으려 안간힘을 썼다.

까방나산의 권 선교사가 기다리고 있는 세계비전센터에 도착하자 갑자기 엄청난 양의 소나기가 퍼붓기 시작했다. 그 비 때문에 비전센터는 정전이었다. 몇 개의 촛불이 밝혀진 비전센터에서 우리 일행을 맞이하는 권 선교사의 단 한마디에 내 몸은 스르르 무너져 내리듯 평안이 찾아왔다.



“어서 오세요! 신발은 벗어서 신발장에 넣고 들어오셔야 해요.”

그냥 웃음이 나왔다. 작은 키와 독특한 목소리 때문이기도 했지만 까방나산 주변에 그가 뿌려놓은 맑고 투명한 영성 때문이기도 했으리라.

간단한 식사를 마친 후 그와 마주앉았다.

“저기, 죄송한데 저 오늘은 좀 쉬겠습니다. 사실은 열이 좀 심해서요.”

권 선교사의 행동은 보통 사람이 흉내 내기 힘들 만큼 빠르고 민첩했다.

“잠시만요. 이거 우리 양봉 농장에서 채취한 건데, 드시고 주무시면 낼 아침엔 몸이 거뜬할 겁니다.”

권 선교사가 가져온 것은 프로폴리스였다. 그 유명한 항암 작용을 한다는 귀한 약이었다.

“많이 넣었습니다. 이거 다 드시고 쉬세요.”

다음 날 아침 거짓말처럼 몸이 거뜬해졌다.

새벽 6시에 일어나 비전센터와 연결된 학교로 향했다. 2006년에 세워진 이 학교는 그동안 그가 세운 학교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컸다. 유치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로 미래의 기독인 리더 양성과 지역사회 복음화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학교를 둘러보며 선교사로서의 그의 삶을 들여다보았다.

그가 스무 살이 되던 어느 날 ‘선교사가 되려면’이란 작은 책 속의 한 구절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하루에도 수없이 예수님의 소식을 듣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평생 한 번도 예수님의 소식을 들어보지도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을 위해서 누가 응답 하겠는가’라는 질문에 책을 덮고 바로 “주님 나를 보내소서”라고 고백했다.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1995년 2월 2일. 세 살 난 딸아이와 아내를 데리고 필리핀 땅을 밟았다. 그의 나이 서른셋이었다.

그가 세운 공동체 오마얌교회는 비전센터에서 걸어서 3일을 가야 한다. 보홀은 배로 9시간, 아구산은 자동차로 13시간. 새벽부터 그와 사역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15개 교회와 학교 공동체를 세웠다는 것을 알았다. 하나님의 이름과 기아대책의 여러 개발 사업으로 일군 몇 곳의 공동체를 방문하면서 이어진 그의 15년 사역의 역사는 감동의 드라마였다.

조상신을 섬기며 씨족사회를 이루고 있는 원주민을 사귀기 위해 권 선교사는 산에 오르기 전에 머리를 흩트리고 흙과 마른 풀잎을 옷에 문질렀다. 먹을 것은 준비하지 않았다. 말이 통하고 그들의 문화를 이해해 갈 즈음에 그들도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15년 사역. 처음에는 이곳저곳 흩어져 사는 사람들을 교회 주변으로 이주시켜 교회 앞마당에 샘을 만들고 그곳에서 빨래와 식수를 해결하도록 했다. 주민들이 함께 노동하고 공동으로 재배하는 옥수수 밭은 수십만평이 넘는다. 실제로 옥수수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그들에게 채소와 여러 열대과일을 재배하게 하면서 배고픔이 해결되고 그들의 일상을 지배해 온 술, 노름, 마리화나, 게으름, 무지 등이 사라졌다.

실제로 반군이 살고 있는 이 지역에 복음이 전파되면서 반군은 정부에 투항하게 되었고 정부는 반군의 지명수배 해제와 정착을 위하여 그들을 돕게 되었다. 놀라운 일 중 하나는 반군 가정에서 반군으로 활동하던 2명의 자녀가 공동체 생활을 하게 되면서 현재는 각각 교회를 담당하는 사역자로 변화 성장한 것이다. 그들의 변화는 살인과 보복, 혼란과 분쟁의 요소를 제거시켰다. 배고픔이 해결된 아이들은 학교로 몰려와 체계적인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게다가 2009년 10월부터 기아대책의 회복 프로그램인 VOC(Vision of a Community)를 도입하고 후원을 받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성인을 위한 문맹 퇴치와 공중보건 계몽운동을 더 활발하게 펼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이야기는 은혜와 감동의 연속이었다. 생명까지도 내려놓고 시작한 선교사역은 하루 24시간이 턱없이 모자라 보였다. 그들과 똑같이 먹고 노동하고 잠자는 그에게 반군에서 사역자로 변신한 젊은 리더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우리들의 희망이며, 은인이자 기둥이며 사랑입니다.”

민다나오(필리핀)=글·사진 조인숙(사진작가·갤러리 공간 루 대표)

■ 후원안내

ARS: 060-700-0770 계좌: 국민은행 059-01-0536-352(예금주: 기아대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