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스토리] 탤런트 김미숙씨와의 증도 바닷길 동행
입력 2010-10-20 20:56
마음 씀씀이가 참 고운 ‘이웃집 누나’
‘슬로시티 증도 홍보대사 김미숙.’ 드라마와 라디오 진행 등 일 빼고 얼굴 내밀기를 싫어하는 좀 깐깐해 보이는 중견 배우다. 하지만 그를 잠깐이라도 만나 보면 선입견이 무섭다는 것을 단박에 느낄 수 있다. 쉰 고개를 넘은 남성들에겐 한 번쯤 만나봤으면 하는 이상형의 탤런트가 아닐까. 1959년에 태어난 김씨는 어린시절 아버지의 품에서 신앙의 숨결을 먹고 자랐다. 중학시절엔 철학 교수로부터 삶의 지혜를 배웠다. 지는 꽃잎을 바라보기만 해도 눈물이 나던 시절엔 한 목회자의 사랑으로 중심을 잡았다. 대학 문턱을 앞두고선 4명의 동생을 위해 자신의 욕심을 거둬들였다. 39세엔 4년 연하의 남자를 사랑하고 남매를 뒀다. 사랑하는 아버지와 남동생을 몇 년 전 먼저 하늘나라로 보냈지만 늘 푸르고 환한 미소를 띤다. 지난 7일 천사의 섬 전남 증도. 세월이 피워낸 하얀꽃(소금)밭 인근 우전해수욕장에서 그를 만났다. 이 섬에 지천인 해당화가 만발했을 때 봤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섯 살 때 아버지 품에서 예배를 드리다
그는 왜 남도의 이 작은 섬에 홀딱 반했을까. 79년 KBS 6기 탤런트로 데뷔해 30여년 동안 인기를 끌고 있지만 지금까지 특정 지역이나 단체를 알리는 일을 하지 않았다. 그러던 그녀가 조금은 변했다. 시민단체 활동에 참여한 것. 대가는 증도 면장이 가끔 보내주는 천일염 한두 포대와 자연산 김 몇 장이 전부다.
이날 김씨는 증도에서 열린 ‘한·중·일 아줌마 지구살리기 발대식’ 사회를 봤다. 한국의 생활문화 개선을 위한 시민단체 ‘아줌마는 나라의 기둥(아나기)’ 집행위원장을 맡았기 때문이다. 행사 후 드라마 촬영을 위해 제주도로 가야 하는 일정이라 50분 정도밖에 시간이 없었다. 그는 요즘 인기리에 방영 중인 SBS 주말 드라마 ‘이웃집 웬수’에서 첫사랑의 순정을 간직한 싱글녀(영실)로 나온다. 서울에서 아침 일찍 출발하는 바람에 아침과 점심도 못 먹었다면서도 사진부터 먼저 찍어야 한다는 요청에 물 한 잔을 다 마시지 않고 포즈를 취했다.
언제부터 교회에 다녔냐고 물었더니 옛날 흑백 사진첩을 보고 설명하듯이 생생하게 이야기했다. 그는 어릴 적 아버지와 함께 예배당에 다녔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고 말했다. 그의 회상으로 그려본 장면은 이렇다. 64년 가을 어느 주일 서울의 한 예배당. 단발머리의 여섯 살배기 여자 아이가 아버지의 품에 안겨 졸면서 눈을 깜빡인다. 서른을 갓 넘긴 아버지는 딸의 볼을 살짝 쥔다. 순간 눈을 뜬 아이는 다시 스르르 눈꺼풀을 내린다.
“몇 번인가 졸았어요. 눈을 떠 보면 아직도 하얀 두루마기를 입으신 어느 할아버지가 기도를 하고 계시는 거예요. 참 길게도 하신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품이 나면 아버지께서 입을 막으시곤 하셨죠.”
부녀는 교회 종소리만 들어도 기쁘고 행복했다. 아버지는 딸에게 착하고 성실하고 즐겁게 사는 법을 가르쳤다. 딸은 아버지에게 ‘소금의 철학’도 배웠다. 설탕의 단 맛은 군침을 돌게 하지만 음식의 맛을 내는 것은 소금이라는 지혜를 말이다.
“아버지는 소금을 아주 좋아하셨어요. 토마토를 먹을 때도 남들은 설탕을 찍어 먹는데, 우리 집은 소금에 찍어 먹었거든요. 삶은 감자를 먹을 때도 마찬가지였지요. 설탕을 묻히면 제 맛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이죠. 아무튼 저는 설탕보다 소금을 더 좋아해요.”
평생 잊을 수 없는 두 스승을 만나다
김씨는 서울 중앙여중 1학년 때 수양회(채플) 강사로 방문한 안병욱(90) 숭실대 명예교수를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마음의 스승’이라고 소개했다. 김씨는 그때 안 교수가 전한 ‘진실의 입 동상에 손을 넣어도 손 잘리지 않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교훈을 지금까지도 간직하고 있다고 했다. 당시 안 교수는 ‘입언(立言)의 진리’에 대해 말씀했다고 전했다. 아름다운 말에는 생명력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김씨는 물건만 명품을 찾을 것이 아니라 진리와 진실, 도리, 생명력이라는 명품도 찾아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진실의 입 동상에 손을 넣어도 잘리지 않는다는 것.
두 번째 만난 스승은 서울 동선동5가 돈암동감리교회 김동걸(67) 목사다. 남산 숭의여고 1학년 때 필동교회에서 첫 인연을 맺었다. 당시 김 목사는 청년부 담당 부목사였다. 83년 김 목사가 교회를 개척하자 김씨 등 6명의 청년들이 함께했다. 이들은 아직까지 집사와 권사로 김 목사 곁을 지키고 있다.
김씨는 5남매의 맏딸로 태어났다. 대학을 갈 수 있었지만 그녀는 평생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부모님과 동생들의 앞날을 위해 자신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모 백화점의 모델을 거쳐 20세에 KBS 탤런트가 됐다. 아버지를 도와 동생들의 뒷바라지를 도맡았다. 방송통신대학에 들어가 아동교육학을 전공해 한동안 유치원을 운영하기도 했다. 학업의 끈을 놓지 않고 동신대 대학원에서 문화산업학 석사를 취득했다.
김씨는 ‘언제나 처음처럼’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고 있다. 인기가 치솟고 국민배우가 됐지만 그는 토속적인 문화와 자연환경을 사랑하는 한국의 아줌마다. 그는 “예수를 믿는 사람이 이웃을 위해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는 것을 자랑하는 것은 유치한 일”이라면서 일일이 밝히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이날 증도 주민에게 고급 자전거 50대(1000만원 상당)와 헝겊으로 만든 친환경 손가방을 선물하고도 이름을 드러내지 않았다. 해외에도 복음의 씨앗을 뿌렸다. 캄보디아 등 해외선교 지원금으로 수천만원을 지원하고, 필리핀 민다나오 인근에 교회도 지어주었지만 그는 자랑하지 않았다.
정말 멋있게 사는 두 남자에 빠지다
미인 곁에는 늘 멋있는 남자들이 모여든다. 김씨는 5년 전 증도로 여행을 갔다가 우연히 만난 두 남자를 소개했다. 한 사람은 이 섬의 대통령 격인 남상율 면장이다. 또 한 사람은 선친으로부터 염전을 이어받아 태평염전을 운영하며 국내 최초 소금박물관을 세운 손일선 회장이다. 남 면장은 섬 구석구석을 다니며 손수 쓰레기를 줍고 다닐 정도로 온 몸으로 증도를 아끼는 면장으로 주민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손 회장은 하루에 한 번, 착한 일을 하라는 뜻의 이름 ‘일선’답게 살아왔다. 국내 최초로 소금박물관을 만들고 염화나트륨인 광물을 갖가지 식품으로 만들어낸 인물이다.
“제가 처음 면장님을 뵀을 땐 쓰레기를 줍고 있어 환경미화원인 줄 알았어요. 우전해수욕장에 갔더니 거기서도 피서객이 버리고 간 오물을 치우고 계셨어요. 주민들은 그를 면장님이라 부르더군요. 세상에 태어나서 이런 공무원은 처음 봤어요.”
김씨는 남 면장과 손 회장이 주민과 자연을 사랑하는 모습에 푹 빠졌다고 했다. 결국 김씨는 이 두 남자를 위해서라면 어디든지 달려가겠다는 맹세를 했단다. 지난 6월 남 면장은 그에게 슬로시티 홍보대사 명함을 권했다. 김씨는 두말 않고 받았다고 했다.
증도로 가는 길은 지난 4월 증도대교가 완공돼 배를 타고 가던 낭만은 이젠 느낄 수 없다. 많은 사람이 찾는 만큼 주변환경이 훼손되고 있어 안타깝다. 하지만 주일엔 섬주민 대부분 성경책을 들고 교회를 가는 참 행복한 섬이다. 또 2007년 12월 슬로시티 국제연맹으로부터 아시아 최초로 슬로시티에 지정됐다. 이어 자전거의 섬, 금연의 섬, 친환경농업생산지역, 울창한 숲 속을 걸으며 사색할 수 있는 느림의 섬으로 거듭나고 있다.
증도는 천국의 섬이다. 일제시대 ‘섬 교회의 어머니’로 불린 순교자 문준경 전도사가 1년에 고무신을 아홉 켤레나 바꿔 신을 정도로 열심히 전도한 덕분이다. 김씨는 슬로시티의 홍보대사지만 ‘복음의 섬’의 홍보대사이기도 하다며 자신을 소개했다.
신안=글 윤중식 기자·사진 김태형 선임기자 yun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