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익는 마을, 길손의 마음도 붉다… 청도 감 마을로 가을여행을
입력 2010-10-20 17:17
가을이 익어가는 경북 청도는 초록색 도화지에 주홍색 물감으로 점을 찍은 거대한 점묘화이다.
경북 경산에서 25번 국도를 타고 남성현 고개를 넘으면 돌담이 멋스런 마을과 산비탈은 물론이요 경부선 철도와 국도 주변이 온통 가지가 휘어지도록 감이 주렁주렁 열린 감나무 천지다. 감나무는 여느 고을처럼 울안이나 텃밭에만 있는 게 아니다. 창문을 열어도 주홍색 감만 보이고 고갯길 가로수도 감나무 일색이다.
전국 감 생산량의 15%를 차지하는 청도 감은 생긴 모양이 둥글납작해 반시(磐枾)로 불린다. 청도반시는 씨 없는 감으로 육질이 연하고 당도와 수분이 높아 홍시 중 최고로 꼽힌다. 460여년 전인 조선 명종 1년(1545)에 이서면 신촌리 세월마을 출신 박호 선생이 평해군수로 재임하다 귀향 시 그곳의 토종 감나무 접순을 무속에 꽂아 와서 청도 감나무에 접목하자 씨 없는 감이 열렸다고 한다. 지금도 당시 심은 수령 450년의 감나무에는 감이 주렁주렁 열린다. 청도반시에 씨가 없는 까닭은 무엇일까. 학자들은 청도의 감나무가 암꽃만 피어 수분(受粉)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기에 감꽃이 피는 5월엔 운문댐에서 피어오른 짙은 물안개가 벌과 나비의 활동을 방해함으로써 더욱 수분이 불가능해 먹기에 좋은 씨 없는 감이 열린다고 한다.
청도반시는 곶감이나 단감이 아닌 달착지근한 홍시로 먹는다. 씨가 없어 곶감을 만들면 모양이 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곶감 대신 껍질을 깎은 감을 네 조각으로 쪼개 꼬들꼬들하게 말린 감말랭이다. 최근에는 껍질을 깎아 반만 말린 반건시, 얼린 아이스홍시, 감식초, 감화장품 등이 선을 보였다.
감나무 숲에 둥지를 튼 청도의 마을 중 아름답지 않은 마을이 어디 있으랴만 남성현 고개 아래에 위치한 송금마을 만큼 운치 있는 곳도 드물다. 경부선 기차가 남성현 터널을 지나 청도에 들어서자마자 만나는 송금마을은 150가구의 아담한 녹색농촌테마마을. 송금리(松金里)는 송정산 아래에 위치한 송정동과 금이 나왔다는 쇠골(金谷)의 머리글자를 따서 만든 명칭.
송금마을은 요즘 감 수확철을 맞아 잊고 지냈던 정겨운 풍경들을 연출한다. 울안의 감나무가 담장 밖까지 가지를 드리운 골목길에 들어서면 나지막한 돌담길이 반갑고 감나무 가지에 올라 장대로 홍시를 따는 노인들의 모습이 정겹다.
세계 최초의 감와인 저장고인 와인터널은 송금마을의 명물. 증기기관차가 다니던 1015m 길이의 와인터널은 1904년에 완공된 경부선 남성현 터널로 1937년 아랫마을에 복선 터널이 생기면서 폐쇄됐다. 너비 4.5m, 높이 5.3m인 남성현 터널은 상층부가 아치형의 붉은 벽돌로, 벽면은 자연석으로 만든 것이 특징. 철길을 따라 와인터널 속으로 들어가면 시음장과 터널 레스토랑, 와인 저장고 등이 짙은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송금마을은 와인을 소재로 한 드라마 ‘떼루아’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와인터널에서 막 딴 감을 크기별로 선별하기 위해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감과 홍시가 떨어져 땅바닥을 뒹구는 고샅길을 50m쯤 걸어가면 김주혁 한혜진 주연의 ‘떼루아’ 촬영지인 오래된 시골집이 나온다.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듯한 시골집은 서양화가인 장욱진(1917∼1990) 화백의 고향집이다.
화양읍의 용암온천은 지하 1008m의 암반에서 솟아나는 섭씨 43도의 게르마늄 유황온천수로 데우거나 식히지 않아 천연 그대로의 수질을 자랑한다. 용암온천관광호텔의 용암웰빙스파는 사우나와 바데풀, 아쿠아테라피를 갖춘 온천테마랜드로 유명하다.
청도=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