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광 비자금 파문] 비상장사 지분 10대 아들에 몰아줘 편법 대물림

입력 2010-10-19 22:40


경영권 편법 상속 및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받고 있는 태광그룹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태광그룹 일가의 극단적으로 폐쇄적인 경영구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초등학생 딸에게까지 지분을 할당해 놓는 이호진(48) 회장의 경영 방식이 결국 편법 증여 의혹을 낳았고, 검찰 수사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19일 금융감독원 및 태광그룹 계열사 소액주주들에 따르면, 태광그룹은 주요 계열사의 주식 대부분이 이 회장 일가 및 친인척에게 집중돼 있다. 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는 태광산업은 이 회장의 지분이 15.14%로 가장 많고, 이 회장의 큰형인 고(故) 이식진 태광산업 전 부회장의 아들 원준씨가 7.49%를 갖고 있다. 또 이 회장 일가가 전체 지분을 가지고 있는 티알엠, 티시스의 주식 소유분을 더하면 주식은 36.6%에 달한다.

태광그룹 주요 계열사 역시 이 회장 가족이 지분의 51∼100%를 확보해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구조다. 계열사 중 에스티임, 바인하임, 동림관광개발은 이 회장 부부와 아들·딸이 보유한 지분을 합치면 100%로 개인회사와 다를 바 없다.

태광그룹은 1950년 창업주 고(故) 이임룡 회장이 설립한 뒤 96년 셋째 아들 이 회장이 경영권을 이어받으면서 52개 계열사를 보유한 재계 40위 대기업이 됐다. 그러나 이 회장은 비상장회사 주식을 헐값으로 발행해 아들 현준(16)군에게 지분을 몰아주는 등의 편법증여를 통해 경영권을 확보하는 무리수를 뒀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동원된 비상장회사는 시스템통합업체 티시스와 건물관리업체인 티알엠이다. 태광그룹을 둘러싼 각종 의혹의 도화선이 된 편법증여 의혹의 중심에 두 회사가 있다. 시기는 모두 2006년이었다.

티시스는 2004년 이 회장이 자본금 5000만원으로 세운 소규모 회사였지만, 그룹 계열사의 전산 업무를 수주하면서 급성장해 지난해 1052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 회사는 2006년 4월 유상증자를 했는데 현준군이 전량 인수, 49%의 지분을 확보했다. 현준군은 두 달 전인 2006년 2월 역시 같은 방법으로 유상증자를 한 티알엠의 지분 49%를 인수해 이 회장에 이어 2대 주주가 됐다. 티시스와 티알엠은 이후 그룹의 중추인 태광산업의 주식을 각각 4.51%, 4.63% 매입했다. 결국 현준군은 두 회사를 통해 그룹 주력사 대부분의 지배력을 확보했다.

이 회장이 2006년 당시 초등학생이던 현준군까지 내세워 지배구조를 강화한 것은 집안의 장손인 원준씨와의 후계 싸움 때문이란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원준씨는 한때 태광그룹의 차기 경영권을 물려받을 것으로 예상됐었다. 그런데 두 형의 사망으로 2003년 경영권을 물려받은 이 회장의 당시 태광산업 지분은 15.14%였던 데 비해 원준씨는 이보다 높은 15.5%였다. 결국 원준씨가 일정한 나이가 되면 그룹의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에 이 회장이 미리 대비했다는 것이다.

이 회장의 어머니인 이선애 상무가 원준씨를 후계자로 염두에 두고 이 회장에겐 금융 계열사만 맡기려고 하자 이 회장이 여러 방법을 동원해 지배구조를 바꿨다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로 2006년을 시작으로 이 회장이 우호지분 매입을 서두르면서 현재 원준씨의 태광산업 지분은 크게 줄어들었다.

노석조 기자 stonebir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