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손수호] 해머링 맨은 누굴 때리나

입력 2010-10-19 17:44

요즘 TV 뉴스만 틀면 이 사람이 나온다. '해머링 맨(Hammering Man)'. 서울 신문로 흥국생명빌딩 옆에 망치를 들고 서 있다. 지난 2002년 세워진 미국의 설치조각가 조너선 브로프스키의 환경조형물로 프랑크푸르트 메세에서 시작한 이후 일곱번째 도시로 서울에 세워졌다. 키 22m에 몸무게 50t. 1분17초 간격으로 쉬지 않고 하루 17시간 동안 망치질을 한다. 해마다 보수하는 데 4800만원, 보험료 1000만원, 전기료 1200만원 등이 든다고 하니, 이 남자의 연봉이 7000만원인 셈이다.



태광그룹을 '베일에 가려진 기업'이니, 이호진 회장을 '은둔의 재벌'이라고 부르지만 문화계에서는 세련된 안목을 가진 기업 혹은 CEO로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일주학술문화재단의 활동이다. 태광그룹 창업주인 일주(一洲) 이임용(李壬龍) 회장(1921∼1996)이 1990년 7월 19일 설립했다. 총 자산 규모가 677억원에 매년 20억원 이상을 장학사업과 문화예술 지원에 쓴다. 이곳에서 해외 유학비를 지원받은 수혜자가 4500명이 넘는데도 홍보성 행사를 않는다.

흥국금융은 아트와 비즈니스의 교집합을 추구한다. 지난해 새 CI를 선포한 이후 본격화됐다. 사보 '흥美zine(흥미진)'은 제호 그대로 흥미롭고(흥) 아름다운(美) 읽을거리로 가득한 매거진(zine)을 지향한다. 빌딩 로비에는 강익중의 '아름다운 강산', 조명작가 잉고 마우러의 '홀론즈키의 사열' 등 세계적인 작가의 예술작품이 즐비하다.

지하의 '시네 큐브'도 이 회사가 출혈을 하며 운영하는 예술영화 전용관이다. 아일랜드 영화 '보리밭에 부는 바람'과 같이 작품성이 뛰어나면서도 상업성이 떨어지는 영화가 이곳에 걸렸다. 앞으로는 지방에도 시네큐브를 짓고 독립영화진흥의 메카를 지향하고 있다. 문화예술 행사를 통하는 것이 기업가치와 이미지를 알리는 데 뛰어나기 때문이다. 기초과학이 튼튼해야 산업 부문이 발전하듯 순수예술이 넘쳐나야 문화산업도 꽃 피울 수 있다는 취지다.

그러나 검찰 수사과정에서 확인하는 태광그룹의 기업철학은 순수한 예술정신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보통의 다른 기업들이 저지르는 탈법적 방법과 다르지 않다. 이는 창업자가 강조한 '나무는 숲과 함께 자라야 한다'는 경영철학과도 어긋난다. 경영의 바탕이 건전하지 못하면서 무슨 예술경영을 논할 수 있을까. 해머링 맨이 모기업의 비뚤어진 기업문화를 때리는 듯하다.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