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성가대 반주를 넘어 대변신
입력 2010-10-19 17:57
좌석이 가운데 원형 무대를 둘러싸고 내려다보는 형태의 예배당. 좌석 사이 계단까지 꽉 차게 앉은 300여명이 귀를 기울인 가운데 20여명의 연주가 시작된다. 맨 앞줄 사람과 연주자의 간격은 두세 걸음에 불과하다. 바이올린과 첼로에서는 찡한 악기의 울림까지 전해져 오고, 플루트와 클라리넷의 산뜻한 화음이 내달려 나간 뒤를 그랜드피아노와 오르간이 받쳐 준다. 옛날 유럽에서 실내악을 즐기던 귀족이 부럽지 않은 순간이다. 경기도 양평 국수교회(김일현 목사)의 예배 모습이다. 이 교회는 예배 전체 흐름이 클래식 연주와 어우러진다.
요즘 중대형 교회에서는 수준급 관현악단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관현악단을 성가대 반주 기능으로밖에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면 클래식 음악을 매개로 뜻 깊은 사역을 하는 교회도 있다. 이들 교회는 “클래식만이 이뤄낼 수 있는 아름다움이 있다”고 주장한다.
국수교회 관현악단의 특징은 초등학생부터 30대까지 섞여 있는 것이다. 전원이 이 교회 성도들일 뿐더러 이 교회를 통해 클래식을 처음 접하고 배운 사람들이다. 16년 전 이 교회 차혜선 사모는 ‘노인들 돌보고 장례 치르는 일밖에 없는’ 교회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 동네 초·중학생 6명을 모아 플루트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사모 스스로 서울로 기차를 타고 다니며 배워 가르친 것이었다.
얼마 후 외부 강사들이 초빙돼 바이올린 첼로 트럼펫 클라리넷 반도 시작됐고 동네 아이들은 월 2만원의 비용으로 배울 수 있었다.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음악교실을 통해 음악 전공자가 7명이나 배출됐다. 클라리넷 연주자인 청년부 임일영(29·여)씨는 “처음 악기를 배우던 중학교 1학년 때 여기는 그야말로 시골이어서 전혀 음악을 전공할 환경이 아니었다”면서 “음악이 ‘어렵고 비싼 것’이 아니라 ‘즐기고 꿈꿀 수 있는 것’이라는 점을 교회가 알려줬다”고 말했다.
교회는 그저 가르칠 뿐만 아니라 연주 기회도 계속 만들어줬다. 1998년 구성된 ‘한소리 앙상블’ 연주단은 지역 교회와 병원, 복지시설에서 공연해 왔고, 예배에서의 연주 비중도 점차 커졌다. 무엇보다도 선배가 후배를 가르치고 도와주며 꿈을 주고 키워간다는 것이 가장 큰 동력이라고.
대구중앙교회(박병욱 목사)도 비슷한 경우다. 이 교회는 지난 1월 베네수엘라 촬영팀의 방문을 받았다. 베네수엘라에서 1975년 시작돼 지금까지 25만여명의 청소년에게 음악을 가르치고 삶을 변화시켜 온 음악 교육 프로그램 ‘엘 시스테마’에 부합하는 해외 사례로 이 교회를 찾아 온 것이다.
이 교회 예능교실은 오상국(45) 홍희주(40) 집사 부부가 99년 미국에서 음악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우리가 가진 재능으로 전도하자’는 생각에서 바이올린 4대를 구입, 교회 한쪽에서 가르친 것이 시작이다. 마침 이 교회에는 대구시립교향악단원이 많아 규모가 급속도로 커졌고 이제는 수강생이 400여명으로 늘었다. 이 중 60%가 지역 어린이들이다. 강의료는 월 2만원에 불과하다.
오 집사는 “음악영재를 키운다기보다는 음악에서 즐거움을 찾자는 취지로 가르친다”고 말했다. 교회가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음악을 배우면서 밝아지고, 정서적으로 여유로워진다는 것이다. 학교에 못 다닐 만큼 대인기피가 심했던 아이가 당당하게 무대에서 연주해 감동을 준 일도 있었다.
청주 방서교회(김용대 목사)의 사역은 보다 독특하다. 2003년 결성된 연주단 ‘더 클래식’을 통해 ‘한 사람을 위한 음악회’를 해 오고 있는 것이다. 말기 암환자, 중증 장애인, 백혈병 소년 등 음악을 통한 위로가 꼭 필요한 사람을 선정해 청주 예술의전당 등 전문 연주장에서 50∼100명의 관현악단이 정식 연주회를 펼치는 것이다.
2007년 첫 연주회 관객은 몇 개월 못 산다는 60대 여성 암환자였다. 홀몸으로 행상을 하며 키웠다는 그 아들은 연주회 제목을 ‘고마워요 사랑해요 힘내세요, 우리 엄마!’라고 지었다. 연주회를 행복하게 관람한 이후 이 여성은 3년을 더 살았는데 늘 즐거운 모습이었다고. 아들은 “연주회는 우리 어머니께는 ‘기적’이었습니다”라고 전해 왔다.
서울 문래동교회(유영설 목사) ‘아리엘 관현악단’은 4월 부활주일부터 11월 추수감사주일까지 매 주일 저녁마다 인근 문래공원에서 작은 음악회를 연다. 동두천동성교회(김정현 목사)는 음악적 재능이 있어도 수준 높은 교육을 받기 어려운 지역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위해 음대 교수를 초청, 1대 1 레슨을 진행한다. 비용은 시간당 2만∼3만원에 불과하다. 현재 50여명이 수강 중인데 올해만 3명이 예고에 진학했다.
장로회신학대학교 교회음악과 이수연 교수는 “클래식은 정제된 음악이라 어릴 때부터 접할수록 음악에서 풍부한 감성을 느낄 수 있으며 재능도 키울 수 있다”고 설명하며 “교회는 서민들이 악기 연주를 가까이서 쉽게 접할 수 있는 훌륭한 장소”라고 말했다. 이어 “클래식 음악의 뿌리가 교회와 닿아 있는 만큼 교회가 클래식과 대중의 매개체가 될 수 있는 계기를 좀 더 적극적으로 발굴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황세원 기자 hws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