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출판] 권세의 힘을 좇는 교회 ‘사랑의 혁명’은 잊었는가… ‘대통령 예수’
입력 2010-10-19 17:43
대통령 예수/ 셰인 클레어본·크리스 호 지음, 정성묵 옮김/ 살림
예수님이 만약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다면 선거운동의 슬로건은 ‘희년(jubilee)’이었을 것이다. 안식년이 일곱 번 지난 50년마다 돌아오는 희년의 전통과 풍습은 포로와 억압받는 자를 자유롭게 하고 빚을 탕감해주는 것이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나눔과 빚 탕감, 토지 분배로 이루어진 새로운 경제시스템을 상기시키셨다. 왕도 대규모 복지시스템도 필요 없는 세상, 이것이 예수님이 마음속에 그린 세상이었다.
책은 제국의 종교로 전락한 미국 기독교에 대해 거침없이 비판하면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미래에 대한 믿음을 진지하게 일깨운다. 세상을 논리로 설득하는 자들이 아니라 진정과 행동으로 감동하게 하는 자들이 될 때 비로소 세상은 변한다고 말한다. 즉 하나님의 나라는 바로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믿으면 바로 이 자리가 하나님 나라의 신나는 일터가 된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 미국인인 두 저자가 강하게 비판하는 것은 미국 기독교와 국가의 결탁이다. 지난 미 대선에서 나타났듯이 미국 정치와 기독교는 정경 유착의 정도를 넘어설 정도로 깊은 관계에 있다. 남침례교로 대표되는 이들 교회는 정치적으로는 보수주의, 신학적으로는 근본주의를 대변하면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강렬한 애국심으로 무장한 이들은 미국의 가치와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혼동하면서 하나님이 미국이란 나라를 축복해 번영을 가져다주기를 바란다.
저자들은 “많은 교인들이 좋은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어 하지만 속으로는 오직 국가의 군사력과 경제력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한다. “미국인이 곧 그리스도인이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많다. 이처럼 권력은 교회의 목적과 관행을 타락시킨다.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한 주인을 섬기면 필히 다른 주인과의 관계가 파괴된다는 뜻이다.”
특히 저자들은 미국 기독교가 예수의 본래 가르침과 멀어도 너무나 먼 곳에 있음을 폭로한다. 성서가 처음부터 제국의 지배와 구별된 새로운 세상을 목표로 한다는 점을 놓치지 않고 있다.
“예수님은 겨자씨의 비유에서 힘의 개념을 완전히 뒤엎으셨다. 겨자씨는 부서지고 짓밟혀야 제 힘을 낼 수 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그렇게 부서진 씨앗으로 묘사했다. 예수님의 힘은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파괴당하는 데 있었다. 그분은 십자가로 ‘제국의 검’을 이기셨다.”
결국 예수님의 해법은 제국을 위한 건의사항이 아니라 하나님 백성들을 위한 이론이요 실천이었다.
유대인들은 눈부신 승리 속에서 임할 하나님 나라를 상상했지만 예수님의 비전은 세상 제국에 대한 전면 공격이 아니었다. 그분의 혁명은 소리 없는 전염이었다.
평화운동가인 저자들은 단지 미국의 제국주의와 미국 기독교의 문제를 신랄하게 짚어내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그렇게만 했다면 독설을 쏟아낸 것에 불과할 수 있다. 이들은 진정한 사랑과 정의가 오랜 시간 누룩처럼 번져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미래에 대한 믿음을 진지하게 일깨우고 있다.
또 세상의 불의와 악에 대한 예민한 감각을 갖고서 사람들을 하나님의 질서 속으로 돌아오라고 끊임없이 촉구한다. 재기발랄한 이들의 시각은 독자들을 성경의 이야기들과 초기 기독교의 역사에 대한 즐거운 독서로 이끈다.
교회와 국가의 관계, 기독교의 정치 참여와 관련된 문제는 선거 때마다 돌아오는 이슈다. 책은 이스라엘의 역사와 예수의 가르침, 초대교회의 행적을 돌아보며 기독교 정치의 문제를 처음부터 다시 사고하게 한다.
역사적으로 한국의 기독교가 미국의 기독교를 거의 그대로 받아들였고 지금도 미국과 한국이 정치적 종교적으로 매우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음을 볼 때 저자들이 미국 기독교에 전하는 내용은 한국교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지현 기자 jeeh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