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둘 두 여자의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 ‘참을 수 없는’
입력 2010-10-19 17:34
서른둘, 실제 마음이야 어떻든 ‘너처럼 살았으면 좋겠다’는 넋두리 한 번쯤은 해봤을 만한 나이다. 대학 시절부터 친구였던 경린(한수연)과 정은(추자현)이 그런 사이다. 그러나 한 꺼풀 벗겨보면 쉬운 인생이란 없다. 이 영화는 ‘참을 수 없는’ 일이 도처에 가득하지만 어떻게든 참고 살아가던 두 여자의 이야기다.
학교에서 문학상을 받은 경력도 가진 촉망받는 문학소녀였던 서른두 살의 정은은 중소 규모의 출판사에서 위태위태한 처지다. 철없는 남자친구는 장래에 대한 계획도 꿈도 없다. 늘 보는 친구 경린은 의사와 결혼해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삶의 본질이란 차원에서는 정은의 말처럼 “남편이 물주냐, 사장이 물주냐” 정도의 차이밖에 없는 것 아닐까.
안주하고 싶지 않다면 뛰쳐나올 수밖에. 별다른 대책도 없었지만 그 삶에 그대로 있을 수도 없었던 정은이 회사에서 잘리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거기다 홧김에 소주병을 들고 불량배들의 머리를 시원하게 내리친 대가로 얼마 안 되는 전세금마저 합의금으로 빼주고, 정은은 결국 경린의 집에 얹혀사는 처지가 된다. 경린의 곁에서 수상하게 얼쩡대는 동주와, 졸지에 함께 살게 된 아내의 친구에게 거북한 내색을 감추지 못하는 경린의 남편 명헌까지. 네 명은 비밀리에 새로운 관계를 형성한다.
결말이 파국으로 치닫는 건 ‘너처럼 살아봤으면’이라는 말이 현실이 될 때. 경린은 “이렇게 살 수 없다”면서 한량이나 다름없는 바람둥이와 사귀고, 정은은 친구의 남편에게 끌려버린다. ‘싱글즈’ ‘뜨거운 것이 좋아’에서 여성들의 시선과 심리에 대해 깊이 있는 이해를 보여준 권칠인 감독의 솜씨가 볼 만하다. 30대 여자들의 일과 사랑을 통찰하며 새로운 멜로를 그려낸다.
그러나 군데군데서 ‘싱글즈’가 생각나는 것도 사실이다. 한 달에 1000만원을 가져다주겠다는 남자친구의 구애를 뿌리치고, 치사하고 구질구질한 대로 자신만의 삶을 택했던 나난(고 장진영)의 선택이 신선하게 느껴졌던 그때 이후 무려 9년이 지났다. 그때 스물아홉이었던 여자들은 영화 속에서 서른둘이 되었고, 스물아홉이었을 때보다 훨씬 더한 삶의 책임을 견디지 못하고 휘청댄다.
현실에 대한 균형감각과 파격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며 인물들의 심리를 절묘하게 따라가는 미덕에도 불구하고 경린은 ‘결혼을 선택한 나난’의 변주인 것처럼 여겨진다. 정은은 그때의 동미처럼 자존심 강한 데다 주체적이긴 해도 어딘가 답답하고 한심하다. 서른을 넘긴 나이에 무언가를 결심하는 것은 스물 몇의 나이일 때보다 훨씬 더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 동의할 수 없는 사람들은 이들이 겪는 뒤늦은 성장통이 거북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부담스럽지만 설득력 있는 멜로, 한심해 보이지만 공감할 수밖에 없는 평범하고도 특이한 삶들. 권 감독의 전작들이 그랬듯이 ‘참을 수 없는’은 관객보다 반 발 빠른 이야기를 하는 영화다. 가끔 꿈꾸어보기야 했겠지만 현실 때문에라도 현실이 될 수 없는 이야기, 그래서 현재의 삶 따위는 가볍게 팽개치고 인생을 건 모험을 하는 주인공들은 그야말로 영화 속 주인공일 뿐인데, 실제 이야기를 그린 것처럼 묘하게 현실적이다.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