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수신료 인상 왜 합의 안되나… 수신료 인상액은 500원차 접근, 공정성 놓고 큰 이견
입력 2010-10-19 17:36
현재 월 2500원인 KBS 수신료를 인상하는 문제를 놓고 찬반 양측의 힘겨루기가 팽팽하다. 여권과 KBS 내부, 보수진영은 대체로 인상에 찬성하는 반면 야권과 KBS 2노조, 진보진영 측은 반대하는 전선이 형성돼 있다.
손병두 위원장 등 KBS 이사회의 여당 추천 이사들은 몇 차례 수정 끝에 현재 ‘수신료 4000원, 광고는 KBS 자율’을 인상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수신료 6500원, 2TV 광고 폐지’라는 당초 입장에서 한참이나 물러났지만 야당 측 이사들과 시민사회단체, 시청자 모임 등은 KBS의 편파성과 자구노력 부족 등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KBS가 연내 수신료 인상을 목표로 여론 형성에 나서고 있지만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수신료를 인상하려면 KBS 이사회에서 인상안을 의결하고, 방송통신위원회 검토와 국회 의결 절차를 밟아야 한다.
◇“공적 책무 이행하려면 인상 불가피” vs “자구노력·공정성 확보가 먼저”=인상에 찬성하는 측은 KBS가 자본(광고)으로부터 독립해 진정한 공영방송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걸 명분으로 내걸고 있다. 수준 높은 프로그램으로 국민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2012년까지 방송의 전면 디지털 전환, 난시청 개선, 소외계층 수신료 면제 등 공적인 영역까지 감당하려면 재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수신료 인상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시청자과 시민사회단체, 야당 측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지난해 693억원, 올해 상반기 1005억원 흑자를 내고 있고, 지난해 직원 1인당 인건비가 8000만원이 넘는 KBS가 자구노력은 하지 않고 수신료 인상을 추진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반대 측은 특히 KBS의 편파성을 문제 삼고 있다. 공영방송의 핵심인 공정성을 지키려는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수신료 인상=공적 책무 이행’을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지난 18일 KBS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에서 최문순 민주당 의원은 “국민을 납득시킬 충분한 자구 계획과 공영성 확대 계획을 제시하지 못한 채 수신료 인상을 주장하는 것은 공영방송 KBS가 스스로의 지위를 포기하고 시청자인 국민을 ‘봉’으로 생각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KBS는 지난달 공영성 평가 지수 개발, 공정성 평가위원회 운영, 시청자 위원회 개선, 공정방송위원회와 외부 모니터시스템 강화 등 공정성·독립성 실천 방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구체적인 이행계획이 없는 선언적인 약속에 불과하다는 게 반대 측의 주장이다.
박영선 언론개혁시민연대 대외협력국장은 “지난 6월부터 편파 보도 얘기가 나왔는데, 5개월째 정권에 비판적인 보도에는 눈을 감고 있지 않느냐. 먼저 편파 시비를 빚고 있는 보도가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이사회에 제시한 개선책들이 수신료 인상을 위한 요식적인 행위가 아님을 믿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KBS 이사들, 인상 폭에 이견=수신료 인상의 1차적인 키를 쥐고 있는 KBS 이사회는 이사들의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당초 여당 추천 인사들은 인상에 찬성, 야당 추천 인사들은 반대였지만 여당 측이 ‘4000원으로 인상, 광고는 KBS 자율’ 안을 제시하면서 셈법이 복잡해 졌다.
여당 측 인상안이 야당 측의 수정안(3500원 인상, 2TV 광고는 현행 유지)과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수신료 인상은 조중동 등이 추진하고 있는 종합편성채널에 KBS 2TV의 광고를 몰아주기 위한 꼼수라며 반대했던 야당 측의 논리는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수신료를 1500원 인상할 경우 수신료는 지금보다 3000억원가량 더 걷히는데 공적 책무 강화 비용을 감안하면 2TV 광고 축소는 제한적인 수밖에 없다. 공정성 확보 방안을 두고 논란이 있을 수 있겠지만 수신료 인상 폭에서는 접점을 찾을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공정성 담보할 제도 개선 여부가 변수=수신료 문제는 결국 공정성 논란을 어떻게 해결하느냐의 문제로 귀결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해관계에 따라 공정성 개념에 대한 시각차가 크기 때문에 이 또한 쉽게 풀릴 사안은 아니다.
엄경철 KBS 2노조 위원장은 “사측이 보도의 편파성을 우선 해결하고, 2노조와 단체협약을 맺고 공정방송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전향적인 모습을 보인다면 진보 시민사회단체도 수신료 인상에 호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당 측 KBS 이사들의 대변인 격인 황근 이사는 “공정성은 추상적인 개념으로 보장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아무리 영국의 BBC가 공정하다고 하지만, 좌파 언론이 보기에는 BBC 뉴스도 못마땅할 것이다”고 말했다.
야당 측 KBS 이사들은 수신료 인상을 논의하는 이사회 테이블에 지난 14일부터 나오지 않고 있다. 여당 측 이사들은 합의 처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이 사태가 지속되면 단독처리 기류가 형성될 가능성도 있다.
KBS 수신료정책국 관계자는 “공정성과 수신료 인상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다. 회사가 공정성 담보할 제도적인 대안들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만큼, 야당 이사들이 협상 테이블로 와서 구체적으로 그 안들을 함께 만들어 가면 되지 않느냐”고 말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정성 시비가 계속 불거지고 있는 만큼, 정권 눈치를 보지 않고 중립적으로 KBS를 이끌어갈 사장을 선발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는 게 수신료 문제의 근본적인 해법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선희 기자 su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