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대 ‘노나 모임’… “각박한 세상 삶과 情을 나누죠”
입력 2010-10-18 22:09
지난 7일 오후 7시, 경기도 부천시 괴안동 박은빈(21·여)씨 집에 7명의 대학생이 모였다. 성공회대 사회복지학과 3학년인 박씨를 비롯한 ‘노나 모임’의 성공회대 회원이다. ‘노나 모임’은 ‘너나(노나) 할 것 없이 나누는(노나) 모임’의 줄임말이다. 일상에서 먹을거리나 생필품을 나눠 쓰고 교환하는 모임이다. 둘러앉은 저녁 식탁에는 고향에서 올라온 갓김치와 장조림, 함께 장을 봐 만든 된장찌개와 어묵볶음이 올랐다.
◇삶을 나누는 공동체 노나 모임=모임을 만들게 된 계기를 묻자 변정은(21·여)씨는 “집에 파가 썩어서요”라고 대답했다. 변씨를 포함해 한 집에서 자취를 하던 4명은 지난 8월 냉장고에 다 먹지 못한 채소가 상해가는 것을 보고 물자를 나눠 쓰는 공동체를 생각해냈다. 먼저 학내 게시판에 홍보글을 올렸고 주변 자취생들에게 모임을 알렸다. 처음엔 성공회대 학생 중심으로 구성됐지만 최근에는 근처 가톨릭대 학생들도 참여해 40여명으로 회원이 늘었다.
이들은 노나 모임을 ‘삶을 나누는 공동체’라고 정의했다. 도상훈(24)씨는 “필요한 물건을 남는 사람에게서 받아 쓰는 것도 좋지만, 뭔가 함께할 수 있는 사람들이 생겨 든든하다”고 말했다. 노나 공동체에서는 물자뿐 아니라 생활 정보와 살아가는 이야기도 나눈다. 클럽 상담 게시판을 통해 자취생활의 외로움, 말 못할 고민도 털어놓는다.
‘나눌 것’에 대한 아이디어는 끝이 없다. 각자 가지고 있는 책을 함께 보는 ‘노나 도서관’ 운영도 구상 중이다. 바리스타 친구에게 커피 만드는 법 배우기, 음악을 하는 친구에게 악기 배우기 등 서로의 재능을 나누는 것도 논의하고 있다. 최근 배추값이 뛰면서 배추를 싸게 사 ‘노나 모임 김장’을 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개인화된 현대사회에 대한 반작용=이런 모임이 만들어진 것은 파편화된 현대사회에서 개인이 느끼는 상실감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산업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공동체 문화가 사라지고 삶과 문화를 타인과 나눌 수 없는 데서 오는 정서적 불안이 심화됐기 때문이다. 과거 농경사회에서는 ‘두레’가 서로 농사일을 도우며 전통적인 농촌 문화를 지탱해주는 역할을 했듯 공동체 문화가 뿌리 깊게 남아 있었다.
전문가들은 20대 초반의 대학생들이 ‘공동체’를 만드는데 대해 “타인과 관계 맺고 싶어 하는 욕구가 발현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치솟는 등록금, 어려운 취업 현실에 대한 스트레스가 젊은이들에게 문제 해결을 위한 연대의식을 불러일으켰다는 분석도 내놨다.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구인회 교수는 “요즘 청년세대가 어려운 상황에서 특히 자취생들은 경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더 힘들 것”이라며 “청년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공동체가 형성됐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전국녹색가게운동협의회 김정지현 사무국장은 “나눔의 과정을 통해 현대인 스스로 삶의 방향이나 가치관을 바꿔보려는 것은 의미 있는 변화”라고 설명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