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염성덕] 金正恩, 이름값은 하려나

입력 2010-10-18 17:53


부패방지위원회(腐敗防止委員會). 공직 부패방지를 위한 법령·제도·정책을 수립하고 부패행위 신고 접수·조사 등의 업무를 관장하는 국가기관으로 2002년 1월 발족했다. 명칭은 거창했지만 국민들의 기억에 오르내릴 부패를 척결했거나 대단한 정책을 시행했다는 평가를 받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런 부패방지위가 2005년 7월 국가청렴위원회(國家淸廉委員會)로 명칭을 바꿨다. 정부는 부패방지라는 소극적 목표보다는 ‘국가 청렴도 제고’라는 적극적 목표 달성을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걸었다. 부패방지위는 국민과 공무원들 사이에서도 어감이 좋지 않다는 지적을 받았다.

특히 부패방지위의 뜻을 알게 된 다른 나라 공무원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는 것이다. “나라 안에 부패가 얼마나 많으면 부처 이름을 그렇게 지었느냐”는 식이었다고 해외출장을 다녀온 부패방지위 공무원들은 말했다. 국가청렴위는 2008년 2월 국민고충처리위원회, 국무총리행정심판위원회와 함께 국민권익위원회로 통합됐다.

한자이름 혼선은 정리했지만

개명(改名)은 정부 부처에 국한된 일이 아니다. 성명을 바꿔달라는 사람도 부쩍 늘고 있다. 대법원에 따르면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전국 법원에 개명신청을 한 84만4615명 가운데 73만277명(86.5%)이 이름을 바꿨다. 대법원이 2005년 11월 “범죄를 숨기거나 법적 제재를 피하려는 의도가 없다면 원칙적으로 개인의사를 존중해 허가하라”고 결정한 뒤 급증하는 추세다.

개명을 하는 이유도 다양하다. 롯데 자이언츠 내야수 문규현의 원래 이름은 문재화였으나 ‘문제아’라고 놀림을 받자 문규현으로 바꿨다. 영화배우 정재영은 본명이 정지현이었지만 1999년부터 정재영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했다. 예명과 본명이 다른 데 따른 불편함 때문에 3년 전부터 정재영으로 개명했다. 결혼이민자들이 이효리 등의 예쁜 이름으로 바꾸기도 했다.

50대 주부가 자신과 쌍둥이 딸의 김씨 성(姓)을 ‘통일’로 바꿔달라고 개명신청을 했고, 범행 후 개명을 하고 주소지까지 옮겨 흉악범죄를 잇달아 저지른 몹쓸 인간도 있다. 4대강 살리기 사업에 반대하는 환경단체 회원들은 ‘4대강’을 ‘사대강’으로 바꿔달라고 신청을 했다가 기각당하기도 했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로 결정된 셋째 아들 김정은의 한자 이름은 金正銀으로 알려져 왔다. 중국 외교부와 신화통신 등 중국 언론도 그동안 金正銀이라고 표기했다. 그러다가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김정은의 한자 표기를 ‘金正恩’이라고 통보하자 중국과 일본 언론들은 지난 1일부터 수정했다. 신화통신은 과거 인터넷 기사도 모두 金正恩으로 고쳤다. 김정은의 이름은 한때 김정운(金正雲)으로 알려졌고 “김정일 업적을 어둡게 할 구름 운(雲)자보다는 ‘은을 낼’(빛을 내다는 북한식 표현) 은(銀)자가 3대 세습에 유리하다”는 해석까지 등장했었다.

최소한의 의식주는 해결해라

북한은 27세 젊은이 김정은을 북한 권력자로 등장시키더니 연일 우상화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김정은이 미사일 부대를 방문하고 군 열병식을 지켜보는 등 선군(先軍) 정치에 올인하는 모습을 보고 전 세계는 안타까움과 함께 실소를 금치 못하고 있다. 북한이 3대 세습과 전쟁 놀음에 주력하는 동안 주민 수백만명이 굶어죽었거나 아사 상태에 놓여 있고, 많은 이들이 목숨을 건 탈출을 시도하고 있다. 북한 정권이 온갖 감언이설을 동원하더라도 주민의 자유를 억압하고 배를 곯게 해서는 정권의 존재가치를 인정받을 수 없다.

김 위원장의 큰아들 김정남이 지난 9일 일본 TV와의 인터뷰에서 “동생(김정은)이 주민들의 윤택한 생활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고 보도됐는데, 윤택한 생활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의식주라도 해결하려고 노력했으면 좋겠다. 북한 정권에는 우이독경(牛耳讀經)이겠지만.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