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산업 힘은 연구소재 품질서 나온다
입력 2010-10-18 17:47
집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바퀴벌레. 소파나 가구 밑을 기어 다니는 바퀴벌레를 마주치기만 해도 기겁을 하기 일쑤다. 하지만 연세대 의대 용태순(환경의생물학교실) 교수와 연구원들은 이런 바퀴벌레를 자식처럼 애지중지하며 곁에 두고 키우고 있다. 한 두 마리도 아니다.
지난 14일 찾은 연구실내 사육실에는 크기가 5㎝가 넘는 미국산을 비롯해 모두 4종의 바퀴벌레 1000여마리가 투명 용기 안에서 바글거리고 있었다. 또 한 켠에는 모기 51종, 깔따구 100여종, 진드기 200여종, 파리 30종, 벼륙 5종, 벌 5종, 개미 2종, 빈대 1종 등 모두 400여종 1만개의 절지동물(구부러진 다리를 가진 동물) 표본을 보관 중이었다.
용 교수는 “다수의 절지동물은 바이러스와 박테리아, 기생충 등 감염성 병원체를 매개하거나 알레르기의 원인이 된다”면서 “이처럼 사람 건강에 영향을 주는 여러 종류의 절지동물을 채집해 사육하고 다른 연구기관에 분양해 의학, 생물학 연구에 활용케 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이름도 의용절지동물소재은행이다.
◇기초연구 & 바이오산업의 핵심 ‘연구소재’=교육과학기술부 아래 재단법인 연구소재중앙센터(센터장 이연희 서울여대 교수) 산하에는 과학자들에게 필요한 연구재료를 공급하는 이런 기관이 여럿 있다.
지구 상에 존재하는 동물, 식물, 미생물, 인체 유래 검체(암 조직, 혈액 등), 융합 물질(결정, 고분자) 등 크게 5개 분야의 다양한 연구소재들을 확보하고 대학이나 국·공립연구소, 기업체, 의료기관 등에 무료로 분양해 주고 있는 곳이다.
1995년 5곳으로 시작해 15년이 지난 현재 의용절지동물소재은행을 비롯해 서울대의 한국세포주은행, 가톨릭의대 물환경바이러스은행, 서울여대 항생제내성균주은행, 경북대 제브라피시은행, 포스텍 변형핵산은행 등 모두 36곳(25개 대학 소재)의 연구소재은행이 운영되고 있다. 이들이 보유한 연구소재들은 1074만개에 달하며 2009년 한 해에만 23만5000여개가 외부에 분양됐다.
연구소재를 활용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비율이 가장 높은 산업은 제약 분야다. 우리가 먹고 있는 약의 25%는 생물에서 유래된다. 대표적인 예가 버드나무 추출물로 만든 인류 최고의 명약(?) ‘아스피린’이다. 중국 토착 식물인 ‘스타아니스(팔각회향)’를 활용해 만든 신종플루 치료제 ‘타미플루’도 있다. 스위스 제약사 로슈는 타미플루로 2009년 상반기에만 1조1300억원을 벌어들였다.
세계 각국은 이처럼 고부가가치 연구재료 특히, 생명자원을 확보하고 보관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바이오산업과 생명공학 연구에 유용하게 쓰이려면 연구재료의 품질이 뒷받침돼야 함은 물론이다. 신뢰성 있는 연구소재를 제공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품질관리가 중요한 이유다.
◇분양 소재 30% 품질불만 이의신청…체계적 관리·재정지원 현실화 필요=하지만 국내 최대 생명자원 보유·분양 기관인 연구소재은행들에 확보된 소재 중 품질이 검증되지 않은 것의 비율이 83%에 이르고, 분양된 소재 중 품질 불만 등으로 이의가 제기된 비율도 30%에 이른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한나라당 김세연 의원은 최근 교육과학기술부 국정감사 자료에서 이 같은 문제점을 추궁하며 연구소재 품질의 신뢰성 확보를 위한 대책을 주문했다.
김 의원에 따르면 연구소재중앙센터가 지난해 확보한 연구소재 63만4101개를 분석한 결과, 고유의 특성이 생물학적, 분자학적 검사를 통해 검증된 소재는 17%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에 의뢰해 연구소재은행을 한 번이라도 이용한 연구자 2만2000명을 대상으로 올해 3월 분양 서비스에 대한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30%가 품질에 불만을 표출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많은 연구자들이 국내 소재은행을 외면한 채 해외에서 비싼 돈을 들여 연구소재를 들여오는 일이 허다하다. 해외 연구자들이 우리 연구소재를 활용하는 예는 극소수에 불과한 실정이다. 현재 해외 연구자에 대한 소재 분양율은 10% 정도에 그친다. 김 의원은 “심지어 일부 연구자 중에는 품질을 우려해 우리 소재은행 것을 이용해 실험을 하고도 외국의 대표적 자원센터 소재를 활용한 것처럼 연구논문에 싣거나 예비실험은 국내 소재를 사용하고 본실험은 외국 유명 자원은행 것을 사용하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연구소재의 품질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이유로는 전문 인력 확보의 애로와 소요 예산의 절대 부족이 꼽힌다. 중국이나 독일 연구소재은행의 품질관리 단가(인건비 등 포함)는 70만원선, 미국은 120만원선인데 비해 한국은 고작 1만2000원선이다.
개별 소재은행은 평균 1억원의 국가 예산을 지원받고 있지만 품질관리를 위한 전문 인력과 검사 장비 확보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품질관리의 연속성을 담보하기 위해선 오랫동안 한 곳에서 일하는 전문인력이 필요한데, 현재 많은 소재은행들이 석·박사 과정 학생들을 주축으로 운영되고 있다.
교과부는 내년 예산안에 개별 은행당 지원액을 지금보다 2000만원씩 늘리기로 했으나 평균 3억원 이상은 반영돼야 제대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란 지적이다. 연구소재은행별로 제각각인 품질관리 시스템의 표준화와 연구소재 관리지침 개발, 소재관리 교육 및 인증 제도 도입 등도 시급하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