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태수의 영혼의 약국(73)
입력 2010-10-18 16:06
밈플렉스(MemePlex)
출생한지 21개 월 된 ‘나루’는 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계의 피가 섞인 내 외손녀이다. 피부는 친할머니를 닮아서 까무잡잡하고, 몸집은 인형처럼 작고, 생김새는 제 어미를 닮아 동양적이다.
지난 추석에 가족 모두 들어와서 열흘을 지내다가 어미는 직장 때문에 먼저 출국하고, 외손녀와 사위만 남았다. 나루 어미의 생각에는, 두어 달 더 있으면서 남편과 딸이 한국말과 음식에 좀 더 익숙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외손녀와 몇 날을 더 같이 있게 된다는 것은 기뻤지만, 어미를 떨어져 보챌 아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려서 은근히 함께 떠나기를 바라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런저런 걱정 끝에 딸은 스위스로 출국했고, 나루는 열흘을 잘 지냈다. 울지도 않고, 엄마를 찾지도 않고, 밥도 썩썩 잘 퍼먹고, 아프지도 않고 잘 지낸다.
오늘 낮엔 김치 국물에 밥을 말아서 머리를 덜덜 흔들면서도 한 그릇을 먹어 치웠다. 그동안 밋밋하게 맨밥만 먹다가 밥상에 올라오는 김치를 보고 몇 번 시도를 하더니, 드디어 ‘할아버지 나라 음식’에 맛을 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나루는 빵과 치즈 같은 건 아주 잊었다.
수전 블랙모어의 ‘밈(MEME)’이라는 책이 있다. 본래 리차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이론’을 심리학적으로 발전시켜 놓은 책이다. 밈은 간단하게 말해 모든 인간에게 있는 탁월하고 보편적인 모방 능력을 말한다. 사람은 모방을 통해 언어와 행동 등을 학습한다는 이론이다. 나루가 할아버지 밥 먹는 것을 보고 따라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모방과 같이 비유전적 방법을 통해 전달되는 문화의 요소를 밈(MEME)이라고 부른다. 인간은 결국 모방의 확산과 전파를 위해 뇌와 몸을 내 놓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밈플렉스(Memeplex)’라 한다.
그런데, 어쩌자고 ‘예수를 믿고 따르는’ ‘예수를 모방하며 살아가는’ 예배당 사람들에겐 밈플렉스가 효험이 없단 말인가!! 그렇게 오랫동안, 그렇게 열심히 ‘예수를 믿고, 예수를 따른’ 많은 사람들 중에 어쩌자고 예수 닮은 사람을 찾아보기 이다지도 어렵단 말인가!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 11:1)
<춘천 성암감리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