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이대영] 졸부국가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입력 2010-10-18 17:46


“산업화 겪으며 사라져 버린 우리 고유문화의 정서를 되찾는 새문화운동 펼쳐야”

국가 위상이 G20을 개최하기에 이르렀건만 우리 대한민국은 세계인이 스스로 비추어 닮고 싶은 문화국가로서의 품격이 있는 나라인가. 혹시 졸부국가는 아닌가. 겉만 번지르르할 뿐 내면은 한없이 추악한 물질만능의 나라, 권력만능의 나라, 아닌가?

예컨대 국정감사를 보자. 피감기관장이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다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우리는 진실과 정성보다는 허식과 허풍과 체면에만 길들여져 있다. 당연히 인간으로서의 품위와 교양은 사라지고 없다. 이곳이 국회인가 정글인가. 정치문화만 그런가. 노사문화는 또 어떤가. 교육문화는 어떤가. 참 스승과 참 제자가 있을 수 있는 문화인가. 이러한 대한민국의 문화가 세계에 감동을 줄 수 있는가. G20에 즈음하여 뒤돌아 봐야 하지 않는가.

올해 문화체육관광부의 정책비전은 ‘품격 있는 문화국가’였다. 그러나 혹여 ‘품격 있는 문화국가’를 말할 때의 그 ‘품격’이 서구화를 의미한 것이 아니었는지 고민해 볼 일이다. 우리는 영미에 유학을 가서는 영어를 통해 그들을 배웠고 프랑스에서는 불어를 통해 그들의 문화를 익혔음에도 전 과목 영어강좌를 자랑삼아 내세우는 대학교가 있고 언론이 이를 대서특필하고 있으니 가히 실용을 위해 영혼을 버리는 파우스트가 아니고 무엇인가. 해외에 ‘세종학당’을 더 많이 짓겠다고 해봐야 부끄러운 일이다. 우리가 지금처럼 우리의 정체성을 잃고 서구사상과 가혹한 물질문명만을 추구한다면, 한 세대만 지나면 무엇이 과연 우리 것이고 무엇이 우리가 세계와 공유해야 할 우리의 고유문화인지 알 수 없을 것이다.

40년 전의 새마을운동이 오늘날 경제적으로 잘 사는 나라의 기틀을 마련하였다면 이제는 산업화를 겪으며 사라져 버린 본디 우리의 고유문화와 정서를 되찾는 운동을 펼쳐야 한다. 이는 곧 새문화운동이다. 지역문화동아리가 중요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 문화동아리는 아마추어와 전문 예술가가 만나는 허브구실을 한다. 예술가는 이론과 지식과 경험을 전수하고 아마추어는 예술가로부터 배우며 문화 향수의 기회를 넓힌다. 이를 통해 지역주민들의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은 높아지고, 지역의 도서관 미술관 박물관 공연장 도서관 등 문화예술시설은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에 의해 가동률이 높아진다. 시민들은 더 좋은 작품을 보기 위해 공연장을 찾고 예술가들은 창작의 혼을 불사른다. 그리하여 몇 년 뒤에는 세계가 인정하는 국가 브랜드 작품도 탄생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생활문화공간도 예술적으로 탈바꿈하고, 전국 방방곡곡 가는 곳마다 저마다의 전통적 문화적 정취가 흐르는 마을로 재탄생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하여 우리의 ‘문화거울’이 만들어질 것이다. 문화거울이라고 함은 우리의 종교, 지식, 예술, 도덕, 법률과 제도, 신화와 전설, 사회적 통념 및 관습 등 대한민국 공동체가 오랜 세월 유지 전승해 온 ‘문화가치관’으로서 개인의 삶을 비추어 바르고 바르지 못함을 판별해주는 거울을 말한다. 우리 5000만 구성원의 삶의 가치관에 따라 정교히 조각될 대한민국의 문화거울에는 물론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 등 먼 나라의 문화적 유산과 정서도 담겨야 한다. 60억 지구촌 공동체 구성원들과 소통·공유할 인류보편의 정서와 문화가치가 함유되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자신을 가두고 있는 문화적 경계를 허물고 담대한 문화적 위상을 펼칠 수 있을 때에 문화거울은 비로소 ‘한민족’이라는 우물에 고여 썩지 않으며 나날이 깨끗함과 새로움을 더해갈 것이다.

대한민국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적 의례와 전통에다 21세기 인류공동체가 당면한 시대정신을 녹여 빚어낸 문화거울이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에 걸쳐 세계시민에게 두루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그리고 우리보다 어려운 나라에게 꿈과 희망을 비추는 아름다운 거울이 될 수 있다면, 문화국가로서의 국격과 위상은 하루가 다르게 높아질 것이다.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 기성세대가 우리의 아들딸들에게 물려줄 마지막 눈물의 유산이다.

이대영(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