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최복이 (7) 요리사 보조로 일하며 요리의 원리 깨달아
입력 2010-10-18 17:45
지난 3월 강의를 들으러 갔을 때의 일이다. 간단한 자기소개 자리가 있어서 본사랑재단 이사장 겸 본죽 연구소장이고 창업자라고 소개하자 모두 놀라는 분위기였다. 의외라는 반응이 역력했다. 어떤 분은 부모님께 물려받은 줄 알았다며 쉬는 시간에 재확인하는 분도 있었다.
생각보다 어리고 요리하는 사람 같은 느낌이 안 난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이가 지긋한 50·60대 장년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40대 중반밖에 안됐으니 말이다. 본죽을 창업할 때는 30대 후반이었으니 당황해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사실 나는 요리사는 아니다. 시인이다. 시집도 5집, 시선집도 올해 한 권 냈다. 그 일이 내 달란트라 생각했고 글 쓰며 살 것이라 스스로도 생각했다. 그런 내가 2002년 본죽을 만들었으니 기적은 기적이다.
본죽을 만들 당시 건강이 완전히 회복된 상태가 아니었다. 순식물성 바디숍 사업 부도에 따른 충격 때문에 신경과 약을 복용하고 있었고 삶이 안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남편은 호떡 장사를 하다가 1999년 친구의 도움으로 외식창업 컨설팅 회사를 열게 됐다. 그때 컨설팅 회사에 딸린 조그마한 외식창업요리학원을 맡을 기회가 주어졌다. 말이 좋아 요리학원이지 사실 요리사 보조에 상담, 청소까지 하는 중노동이었다. 그때 나는 최 대리로 통했다.
하는 일은 단순했다. 다리가 퉁퉁 붓도록 서서 요리사를 돕는 일이었다. 나머지 재료 정리나 설거지까지 하고 나면 밤늦게 녹초가 되어 집에 돌아가는 일이 허다했다. 당연히 차도 없어서 전철과 마을버스를 갈아타며 출퇴근했다.
회의감이 들자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이 치밀어올랐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고 잘하는 일도 아닌데 이렇게 많은 시간을 소모한다는 생각이 들어 무척 힘들었다. 내가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도 답답했다.
그때 나를 지탱해 준 힘은 우연히 듣게 된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의 3분 전화설교였다. 출근하면 꼭 3분 설교를 메모하며 듣고 하루를 시작하곤 했다. 신기하게도 그날 설교 내용이 현실과 맞아 떨어지고 삶에 힘이 될 때가 많았다. 긴 터널에서 하나님이 주신 큰 위안이었다.
그러다 다행히 흥미 있는 일을 찾았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훌륭한 요리사인데 정확한 자기 레시피를 갖지 않고 있거나 주먹구구로 자기 요리는 손맛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요리사들이 있었다. 그분들에게 자기 레시피를 정확히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계량스푼과 계량컵 그리고 저울을 통해 요리의 계량화, 표준화하는 일을 도와주는 것이 나름 재미 있고 보람도 있었다.
그렇게 2∼3년 하다 보니 나름 요리의 원리를 알게 되었고 철학도 생겼다. 요리는 물론 손맛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정확한 재료의 조화에서 맛이 나고 정확한 레시피를 가지면 요리사가 아니라도 누구나 맛을 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음식은 좋은 재료가 좋은 맛을 낸다는 것, 어떤 음식을 만들든 가족에게 먹일 수 있는 음식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그게 프랜차이즈의 핵심 원리가 된다는 것을 안 것은 본죽이 어느 정도 성공하고 난 뒤였다. 항상 중요한 것은 뒤늦게 깨닫는다.
식당을 하나 하고 싶다고 말하자 남편은 죽집을 권했다. 내가 탐탁지 않게 여기자 남편은 오래되고 유명한 죽집 두세 곳을 보여줬다. 거기서 신사들이 죽을 먹는 모습을 봤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