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 이끌기 15년, 퇴임무대 치른 김동호 집행위원장

입력 2010-10-18 16:41


“기초가 중요한 문화예술… 멀리 보는 안목 필요”

부산국제영화제가 9일간의 열기를 뒤로 한 채 지난 15일 폐막했다. 부산영화제는 올해로 15회째란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로 확고히 자리를 잡았고, 세계 유수의 영화제들과도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급성장했다.

올해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프랑스 배우 쥘리에트 비노슈, 할리우드 스타 윌렘 데포, 티에리 프레모 칸 영화제 집행위원장, 미국의 거장 올리버 스톤, 중국의 장이머우, 대만의 허우샤오센, 이란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

올해 참가자들의 면면만 봐도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상영작도 67개국 306편의 절반가량이 세계 최초로 상영되거나 자국 이외의 나라에서는 처음 상영되는 새로운 영화들이다.

대담=라동철 문화과학부장

‘문화의 불모지’였던 부산은 이제 아시아 영화의 허브로 떠올랐다. 그 중심에는 부산영화제가 있고, 또 그 중심에는 김동호(73) 집행위원장이 있다. 관료 출신으로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영화계에 발을 디뎠지만 김 위원장은 특유의 추진력과 성실함, 온화한 리더십, 넓은 인맥으로 부산영화제의 성공신화를 이끌어냈다. ‘부산영화제의 마당발’ ‘아시아 영화계의 대부’ ‘국제영화계의 마당발’로 불리며 한국영화 중흥의 산파역을 해 온 그가 올해를 마지막으로 집행위원장에서 물러난다.

영화제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지난 16일 오전 부산 해운대 수영만 요트경기장 내 가건물에 있는 영화제 사무국에서 김 위원장을 만났다. 이날 새벽까지 이어진 행사를 마무리하고 늦게야 잠자리에 들었다는 그는 “아침에 일어나 보니 목감기가 왔더라”며 잔기침을 했다. 감기가 찾아온 건 부산영화제의 영광을 위해 그 이면에서 15년 간 짊어져야 했던 무거운 짐을 이제는 마침내 벗게 됐다는 생각에 긴장이 풀렸기 때문이었을까.

-올해 영화제는 어느 때보다도 풍성했던 것 같아요. 김 위원장의 고별 무대라서 그런가요.

“퇴임이기 때문에 비중 있는 게스트들이 많이 왔어요. 참가작이 작년보다 50편 정도 줄었지만 상영작 306편 가운데 월드 프리미어(세계 최초 상영작)가 101편. 내셔널 프리미어(자국 이외 최초 상영작)가 52편이나 됩니다. 영화의 질도 좋았고, 이벤트도 많았죠. 작년보다 훨씬 풍성하고 수준이 한 단계 올라간 영화제였던 것 같아요.”

-부산영화제의 특징과 강점은 무엇인가요.

“우리는 아시아의 신인 감독과 좋은 영화를 발굴해 세계에 소개하는 것과 아시아 영화제작을 실질적으로 지원하는 것, 그 두 가지 목표를 줄곧 추진해 왔어요. 부산영화제의 정체성은 아시아 영화의 발굴이라고 요약할 수 있죠. 이를 위해 1998년 PPP(부산프로모션플랜)라는 프로젝트도 만들었어요. 아시아의 역량 있는 감독들이 제작기획안을 제출하고 이곳에서 투자자를 만나 영화를 만드는 거죠. 그렇게 제작된 영화들이 베니스영화제와 베를린영화제 등 해외 유수 영화제에서 대상과 감독상을 받는 등 좋은 성과를 거두면서 PPP는 부산영화제의 대표상품이 됐어요. 중국의 자장커, 한국의 김기덕 이창동 감독 등 부산영화제를 통해 소개돼 거장의 반열에 오른 감독들이 많아요.”

김 위원장은 2005년 창설한 아시아필름아카데미(AMF)와 2003년 만든 아시아영화펀드(ACF)도 부산영화제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프로젝트라고 설명했다. 그는 “아시아 감독 지망생들을 교육하고 제작비를 구하지 못하는 감독들에게 실질적인 지원을 해줌으로써 부산영화제는 아시아 영상산업을 주도하는 영화제로 부각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성공요인을 꼽는다면.

“영화제를 찾는 20만 관객과 부산 시민들의 적극적인 호응, 영화제 스태프들의 뛰어난 역량과 열정을 빼놓을 수 없지요. 8명의 우리 프로그래머(영화를 선정하고 상영하는 역할을 맡은 사람)들은 세계 어느 영화제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최강의 팀이라고 자부합니다. 부산시의 적극적인 지원과 협조도 큰 힘이 됐습니다.”

-정치적 중립을 지킨 것도 성공요인으로 지적되지 않나요.

“부산영화제는 개막식 때 조직위원장인 부산시장의 짤막한 개막선언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정치인이나 관(官)의 인사말이나 축사를 식순에 넣지 않아요. 처음부터 그 원칙을 지켜왔지요. 철저히 영화인과 관객들이 중심인 영화제를 표방해 왔습니다.”

-부산영화제의 국제적인 위상은 어느 정도인가요.

“위상이 확고하게 정립돼 있다고 자신합니다. 2001년 12월 베를린에서 영화제 집행위원장 정상회의가 열렸어요. 세계 정상급 영화제 집행위원장 9명이 초청됐는데 아프리카와 중남미, 아시아권을 대표해 제가 참석했지요. 그 후에도 칸 영화제 등에서 주요 영화제 집행위원장들의 기자회견이 있게 되면 부산이 꼭 들어갑니다. 2002년 제7회 영화제 때 칸, 베니스, 베를린 등 세계 3대 영화제의 신임 집행위원장들이 모두 참석한 것이 부산영화제의 위상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할 수 있어요.”

-부산영화제의 급성장은 김동호 위원장의 개인적인 역량에 힘입은 바 크다고 합니다. ‘포스트 김동호’ 시대에 대한 우려가 있는 게 사실 아닌가요.

“2005년 제10회 영화제를 치르면서 그만둘 생각을 했어요. 2007년 총회에서 이용관 교수를 공동집행위원장으로 선임한 것은 제가 그만두더라도 영화제가 흔들리지 않고 지속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지요. 이용관 위원장은 영화제를 창설할 때 저를 끌어들였고, 부위원장으로 쭉 있다가 4년 전부터 공동위원장을 맡아 영화제를 실질적으로 꾸려가고 있어요. 제가 그만둬도 문제가 없을 겁니다.”

-부산영화제가 더 성장하려면 인프라 확충과 예산 확보가 필수적인데.

“해운대 센텀시티에 짓고 있는 부산영상센터 ‘두레라움’이 내년 9월 완공되면 10월 영화제 때 사용할 수 있을 겁니다. 영화제가 정부의 재정상황이나 정치적 지형변화 등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튼튼한 재단을 설립하고 기금을 조성하는 것도 과제입니다. 부산시가 뜻은 있지만 당장 부산영상센터에 많은 예산이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여유가 없는 편이죠. 영상센터가 완공된 다음에 본격 추진해야 할 사안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정부의 지원은 어떤가요.

“올해 부산영화제 예산이 99억원인데 그 가운데 국고 지원이 15억원입니다. 작년까지는 18억원이었는데 올해 3억원이 깎였습니다. 올해 예산안을 보니 내년에는 더 줄어들 것 같아 걱정입니다.”

-그럼 영화제는 어떻게 꾸려갑니까.

“올해 부산시가 59억원을 지원했습니다. 영화제 기간 관람료 수입은 6억원밖에 안 됩니다. 나머지는 기업 후원으로 충당하는데 그게 쉽지 않아요.”

-당국에 하고 싶은 말이 많으시겠어요.

“국가브랜드나 이미지를 높이는 데 부산국제영화제 만큼 좋은 이슈가 없어요. 칸 영화제는 예산 2000만 유로(약 310억원) 중 절반인 1000만 유로(155억원)를, 베를린 영화제는 1800만 유로(280억원)의 45%인 800만 유로(125억원)를 정부에서 지원하는데 우리는 정부 지원이 예산의 15%밖에 안 돼요.”

-엄청난 인맥을 갖고 계신데, 특히 친하신 분들은 누구입니까.

“영화인 중에는 임권택 강수연 안성기 등이 오래전부터 함께 영화제 일을 해 왔어요. 연극배우 윤석화 박정자, 가수 노영심과도 친해요. 해외 인사로는 타이거 클럽 사람들이 있죠.”

타이거 클럽은 로테르담영화제 등에서 인연을 맺은 허우샤오셴 감독, 사이먼 필드 전 로테르담영화제 집행위원장, 네덜란드 영화저널리스트 피터 반 뷰어렌, 티에리 프레모 칸 영화제 집행위원장, 김 위원장 등 5명이 멤버로 영화제 등에서 만나면 노래방 등에서 밤새 노래를 부를 정도로 막역한 사이다. 최연장자인 김 위원장은 이 모임에서 ‘빅 브러더(Big Brother)’도 통한다.

-올해 김지미 회고전을 열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그렇지는 않아요. 그동안 김기영 정창화 김수용 이만희 신상옥 최은희 황정순 등의 회고전을 쭉 해 왔었는데 이번에 김지미씨 차례가 온 거죠. 김지미를 한번 짚어야 한다는 게 프로그래머들의 의견이었죠. 개인적으로도 김지미를 주인공으로 회고전을 열면 신구 간, 보혁 간 갈등으로 갈라져 있는 우리 영화계가 화해하고 화합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도 생각했어요.”

-회고전은 뜻대로 잘 치러졌나요.

“올해는 원로 배우들이 많이 참가했어요. 김지미씨와 젊은 감독들이 만났는데 ‘이제는 화해해야 하는 거 아닌가’하는 얘기들이 많이 나왔다고 합니다.”

-공식적으로 임기는 내년 2월 말까지인데.

“예, 하지만 곧 사표를 낼 겁니다. 이미 초청받은 영화제에는 참석하겠지만 집행위원장 자격으로 새로운 일은 만들지는 않을 거예요.”

-퇴임하시면 무슨 일을 하실 겁니까.

“할 게 너무 많아요. 정사와 야사를 버무려 부산영화제를 조명하는 책으로 낼 생각입니다. 이번 영화제 기간에 출간한 세계 영화제 기행 책자(‘영화, 영화인 그리고 영화제’)도 시간에 쫓기다 보니 38개 영화제밖에 소개하지 못했어요. 싣지 못한 영화제가 30여개는 더 있기 때문에 속권을 내야겠어요. 여유가 되면 영화도 1∼2편 만들어 볼 생각입니다. 물론 돈은 안 되는 영화가 되겠지만(웃음).”

김 위원장은 영화의 거장들을 만나 영화를 주제로 인터뷰한 내용을 묶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어볼 계획이라고 했다.

-영화에도 출연하셨던데,

“이재용 감독의 ‘정사’, 프랑스 감독 클레어 드니의 ‘침입자’, 장률 감독의 ‘이리’에 카메오로 출연했어요. 최근에는 임권택 감독의 101번째 영화 ‘달빛 길어 올리기’에서 제법 비중있는(?) 역을 맡았지요(웃음). 11월쯤 개봉될 겁니다.”

-퇴임하면 아무래도 좀 한가해지겠네요.

“당분간은 그렇지 않을 것 같아요. 당장 내일(17일) 베트남영화제에 참석하러 출국해야 하고, 21일 돌아오면 바로 다음날 도쿄영화제에 가야 해요. 27일 돌아오지만 11월 4일 슬로바키아의 브라티슬라바 영화제에 심사위원으로 가야 합니다. 내년 4월까지는 개인적으로 초청받아 영화제에 가는 일이 많을 것 같아요.”

-이제 홀가분한 입장에서 정부의 문화정책에 대해 조언 한마디 해주세요.

“문화예술분야는 ‘지원은 적극적으로 하되 간섭은 배제한다’ 원칙을 지키는 게 중요합니다. 지금 산업화에 너무 경도되다 보니 문화예술을 산업적인 측면에서만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데 문화예술이 꽃을 피우려면 기초예술에 더 중점을 둬야 합니다. 문화행정은 단기간에 가시적인 효과를 내려고 하지 말고 적어도 10년, 많게는 50년을 내다보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시책을 펴야 합니다.”

◇ 김동호 위원장은

1937년 강원도 홍천 출생. 어릴 때 서울로 올라왔으나 경기중 1학년 때 6·25전쟁이 발발, 부산에서 4년간 피란생활을 했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후 61년 문화공보부 주사보로 공직에 입문했다. 문화국장 보도국장 기획관리실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치며 문화예술진흥원(현 문화예술위원회), 국립현대미술관, 독립기념관, 예술의전당 등 문화시설 기반 조성 사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낙하산 인사’라는 영화인들의 반발 속에 취임한 영화진흥공사 사장(88∼92) 때는 밤새 술을 마셔가며 반대하는 지역 주민들을 설득해 남양주 종합촬영소를 설립하는 뚝심을 보였다. 예술의전당 초대 사장(92), 문화체육부 차관(92∼93)을 역임했고 공연윤리심의위원회 위원장(93∼95)을 끝으로 34년간의 공직생활을 마감했다. 96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에 취임했다. 64년 국전 서예 부문에 입선할 정도로 서예에 조예가 깊고, 미술에도 관심이 많다. 두주불사형의 알아주는 술꾼이었으나 2006년 1월부터 건강을 위해 완전히 술을 끊었다. 대한민국 영화대상 공로상, 은관문화훈장, 프랑스 예술문학훈장 ‘오피시에’ 등을 받았다. 약사인 부인 홍명자(70)씨와의 사이에 1남 2녀를 두고 있다.

라동철 문화과학부장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