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질금리 마이너스 시대] 물가 끌어올리겠다는 美 때문에… 高물가 한국 이중고
입력 2010-10-17 18:34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디플레이션(물가하락)을 막기 위해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자극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양적 완화를 더욱 적극적이고 지속적으로 하겠다는 의사도 피력했다. 이는 한국 입장에서는 물가와 환율 관리를 더욱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벤 버냉키 Fed 의장은 16일(현지시간) 보스턴에서 열린 연방준비은행 연례회동에서 “올 들어 8개월간 소비자물가 상승률(CPI)이 전년 동기 대비 1.1%로 1961년 이래 최저치”라며 “디플레 위험이 바람직한 수준보다 높다”고 말했다. 그는 “대부분의 Fed 관리들은 물가 상승률이 2% 이하는 돼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밝혀 처음으로 물가관리 목표치를 제시했다. 이와 관련 파이낸셜 타임스는 새로운 부양책을 CPI 2%에 묶겠다는 강력한 신호라고 풀이했다. 채권 매입이라는 기존의 양적완화 수준에서 나아가 자산매입 등 더욱 강력한 대책을 통해 달러를 더욱 지속적으로 풀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찰스 에번스 시카고 연방준비은행장 등도 이날 회동에서 미국 경제가 돈을 풀어도 경제가 회생하지 않는 ‘유동성 함정’에 빠져 있다면서 인플레율이 떨어지지 않도록 물가 목표치를 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을 경험하지 않기 위해서는 사전 조치로 디플레 목표치를 정하자는 것이다. 이 같은 논의내용이 다음달 초 공개시장위원회에서 공식 채택된다면 한국 입장에서는 더욱 어려운 상황에 놓일 수 있다.
한국은 낮은 물가 상태를 지속하고 있는 미국과 달리 인플레이션 압박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9월 중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6%로 이미 관리목표인 3%를 훌쩍 넘어섰고, 4분기 이후 내년까지도 이 수준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미국이 디플레이션 방어 조치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단기금리는 이미 제로(0)상태인 만큼 건드릴 수 있는 것은 장기 채권금리뿐이다. 이 경우 한국 입장에서는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시기가 한없이 길어질 수 있다. 치솟는 물가수준을 감안해 울며 겨자 먹기로 금리를 올리더라도 장기금리는 오르지 않는 이른바 ‘그린스펀의 수수께끼’에 걸려들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다.
이동훈 기자 d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