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고 배고프고, 사는 게 아니었다”… 7년 해외도피 끝에 법의 심판 자청 前 은행원

입력 2010-10-17 18:07

2001년 8∼9월 은행원 장모(37)씨는 인터넷에서 주민등록번호 생성 프로그램을 구해 가공의 인물 명의로 가짜 신용카드 20장을 만들었다. 2∼3개월 후 주식 투자로 생긴 빚이 불어나자 장씨는 이 카드를 이용해 자신이 일하던 은행에서 현금서비스 버튼을 눌러 600여만원을 인출했다.

‘나도 한번 부자가 되고 싶다’는 욕심에 주식에 투자한 게 화근이었다. 가난 속에서도 상업고등학교에 진학,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성실했던 장씨가 주식 투자 실패에 발목을 잡힌 것이다. 한번 잘못 들어선 길은 끝이 나지 않았다. 현금서비스로 ‘돌려막기’를 하다 국내 신용 한도로는 추가 인출이 불가능한 상황까지 내몰렸다. 그는 미국 라스베이거스로 가 카지노에 있는 현금인출기를 이용, 마구 돈을 뽑았다.

현금서비스로 끌어 쓴 돈이 1년여 만에 1억8000만원을 넘자 그는 중국을 거쳐 태국으로 도망갔다.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은행은 장씨를 고발했다. 장씨는 미리 출국해 붙잡히지는 않았지만 여권 유효기간이 지나 불법 체류자가 됐다. 부모와도 연락을 끊고, 극심한 불안감에 시달리던 그는 소모적인 삶을 마무리하기 위해 태국 대사관을 통해 자수할 뜻을 밝히고 귀국했다. 경찰은 가짜 신용카드로 1억8000여만원의 현금서비스를 받고 면세점 등에서 손목시계와 노트북 등 200여만원어치를 구입한 장씨를 사기와 절도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6단독 김상우 판사는 “신용을 중히 여기는 은행원이 주식 투자나 도박을 위해 지능적이고 계획적으로 돈을 빼돌려 신뢰관계를 크게 훼손했다”며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했다고 17일 밝혔다.

안의근 기자 pr4p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