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광 로비, 권력형 비리로 터지나… 검찰, 정·관계 로비 정황 곳곳서 포착

입력 2010-10-17 18:33


검찰 수사를 계기로 태광그룹의 정·관계 로비 의혹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청와대, 방송통신위원회, 금융감독위원회, 국회 등 사업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거의 모든 곳에 태광그룹의 손이 닿았다는 것이다. 태광그룹은 시도한 사업 대부분을 성사시킨 만큼 로비 의혹 대상도 거물급이다.

17일 서울서부지검과 관련 업계 등에 따르면 태광그룹 로비 의혹 대상 가운데 가장 주목받는 곳은 청와대와 방통위다. 케이블TV 업체 1위였던 태광이 6위 큐릭스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주무 부처인 방통위와 청와대 방송정책 담당 라인에 조직적으로 로비를 벌인 정황이 있다는 것이다.

방통위는 2008년 12월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통과시켜 태광그룹이 케이블 방송권역을 추가로 보유할 수 있는 길을 터줬다. 태광그룹은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 통과 다음달인 지난해 1월 큐릭스 지분 70%를 매입했다. 또 4개월 후에는 태광그룹의 큐릭스 인수를 최종 승인했다. 방송법 시행령을 바꾸고, 인수 대상 회사 지분을 매입한 뒤 방통위 승인이 떨어지는 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태광그룹의 큐릭스 지분 매입과 방통위 최종 승인 사이인 지난해 3월에는 ‘청와대·방통위 성 접대 사건’이 불거졌다. 태광그룹 케이블TV 업체인 티브로드의 팀장이 청와대 방송 정책 실무 담당자인 행정관 2명과 방통위 뉴미디어과장에게 서울 노고산동 모텔에서 성 접대를 하다 단속 중인 경찰에 붙잡혔다. 성 접대 직전 티브로드의 팀장은 청와대와 방통위 관계자들에게 인근 룸살롱에서 180만원어치 술을 샀다. 경찰은 술값이 티브로드 법인카드로 계산됐다고 발표했다.

방통위의 티브로드·큐릭스 합병 승인 여부 결정을 앞둔 민감한 시기였다. 룸살롱과 성접대가 자연스럽게 이뤄질 정도면 서로 초면이 아니었을 것이고, 티브로드가 사업 확장을 위해 청와대 및 방통위 관계자를 꾸준히 관리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은 법안이 아니어서 국회 처리 절차 없이 방통위 내부 의결만으로 통과됐다. 하지만 태광그룹이 실무적으로 가장 중요한 방통위에 공을 들이면서도 혹시 있을지 모르는 청와대와 국회의 반대 여론을 최소화하기 위해 물밑 작업을 벌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태광그룹이 2006년 쌍용화재(현 흥국화재)를 인수하면서 금감위의 선처를 받았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당시 쌍용화재 인수 실무를 담당했던 태광그룹 계열사 흥국생명은 2004년 대주주에게 대출금 125억원을 불법 지원한 것이 적발돼 금감위로부터 기관 경고를 받았다. 보험업법 시행령에 따르면 경고를 받고 3년이 경과하지 않은 업체는 신규 보험업 허가를 받을 수 없다.

그러나 금감위는 별 문제 없다며 쌍용화재 인수를 최종 승인했다. 당시에도 금감위가 태광그룹에 사실상 특혜를 준 것 아니냐는 뒷말이 무성했다. 심지어 태광그룹 직원들이 금감위 관계자들에게 정기적으로 고가의 선물을 줬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검찰 수사의 핵심은 태광그룹 이호진 회장이 차명주식 등의 형태로 적게는 수천억원, 많게는 1조원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을 규명하는 것이다. 동시에 검찰은 이 돈과 정·관계 로비의 연관성을 밝히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용훈 기자 co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