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배서 허리까지… ‘말 못할’ 엄마들의 고통
입력 2010-10-17 17:36
임신·출산 경험 중년여성 위협하는 ‘골반울혈증후군’
“때때로 배꼽 아래 부위가 묵직하게 아프다. 꼬리뼈나 양쪽 허리가 아플 때도 많다. 배뇨 시 통증을 느끼기도 한다. 오래 서 있었거나 피곤할 때 특히 심하다. 소변도 자주 마렵다….”
최근 6개월 동안 특별한 이유도 모른 채 이 같은 증상을 겪은 여성들은 ‘골반울혈증후군’이란 병일 수 있으니 한번쯤 샤워를 할 때 외음부 주위를 살펴보자. 만약 손등이나 종아리 부위의 표재 정맥이 부풀어 올라 힘줄처럼 푸르게 도드라져 보이듯 외음부 주위에도 핏줄이 불거져 나온 게 눈에 띈다면 ‘골반울혈증후군’이란 병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 산부인과 정수경 교수는 17일 “뚜렷한 병력도 없는데 여러 달 불규칙적으로 골반 부위가 아프다는 이유로 병원을 찾는 여성들 중 약 15%가 초음파검사를 통해 골반울혈증후군으로 진단되고 있다”고 밝혔다.
골반울혈증후군이란 골반 주위 정맥혈이 난소 정맥을 통해 심장 쪽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그대로 정체돼 있거나 난소 쪽으로 역류하면서 통증을 일으키는 증상을 가리킨다.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차이점이 있지만 발병 원리는 종아리 부위 정맥의 피가 판막 이상으로 역류하며 부풀어 오르는 하지정맥류와 비슷하다. 보통 임신과 출산을 경험한 중년 여성들에게 많다.
문제는 이들 10명 중 9명이 오랫동안 뚜렷한 원인을 찾지 못해 가족으로부터 ‘꾀병을 부린다’며 구박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병이 은밀한 곳에 생기는 것인데다 증상도 이렇듯 모호하다보니 환자들은 정확한 진단을 받기까지 산부인과는 물론 내과, 정형외과, 통증클리닉, 재활의학과 등을 전전하며 시간과 돈을 날리고 병은 병대로 키우기 일쑤이다.
처음 골반 내 통증을 느끼기 시작한 이후 2년이 넘도록 이유도 모른 채 혼자서 고통을 삭인 경우가 무려 50%에 이를 정도다.
정 교수는 “만성적인 골반 내 통증 때문에 몸은 힘들고, 가족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가운데 우울증을 합병하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따라서 골반 쪽에서 평소 뭉근한 통증을 느끼거나 가끔 뭔가로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낄 때는 무엇보다 골반 내 장기에 이상이 생겼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환자들이 정확한 병명을 알기까지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 것에 반해 검사는 의외로 간단한 편이다. 산부인과전문의라면 간단한 진찰과 함께 초음파검사를 통해 쉽게 진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골반 내 통증은 자궁내막증, 자궁 및 난소 수술 후유증에 의한 골반 조직 유착증, 자궁선근증, 난소 잔류증후군 등에 의해서도 유발되므로 이들 질환과의 감별 진단이 필요하다. 골반울혈증후군의 경우 초음파 사진을 보면 난소 정맥과 외음부 주변 정맥들이 비정상적으로 확장돼 있는 상태를 나타낸다.
치료는 난소정맥조영술과 함께 비정상적으로 늘어난 정맥을 성형, 정맥혈이 골반 쪽으로 더 이상 역류하지 않도록 처치하는 방법으로 이뤄진다. 난소정맥조영술은 사타구니 쪽 피부에 2∼3㎜ 정도의 절개창을 만들고 이를 통해 국수 가락 크기의 관(카테터)을 난소 정맥까지 집어넣은 후 조영제를 주입해 혈관의 상태를 관찰하는 검사다.
정 교수는 “심장 쪽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골반 속에 정체, 또는 역류하는 피 때문에 확장된 혈관은 코일을 넣어 차단하거나 혈관을 쭈그러트리는 약물(경화제)을 주입하는 방법으로 막아주면 해결된다”고 말했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