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이 단지 배 채워주는 수단일까?… 조각가 조성묵 초대전 ‘빵의 진화’
입력 2010-10-17 17:31
앗! 빵이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만나게 되는 작품이 모두 빵으로 이뤄져 있다. 바닥에 놓여있는 소파나 의자가 그렇고, 천장에 매달려있는 우산과 물감 튜브도 마찬가지다. 평범한 어머니와 안경 쓴 아저씨 등 인물상들도 빵이다. 부풀어 오른 것도 있고 곰보빵 모양도 있다. 다음 달 7일까지 서울 사간동 금호미술관에서 열리는 원로조각가 조성묵(71) 초대전 ‘빵의 진화’에 출품된 작품들이다.
10년 만에 개인전을 갖는 작가는 원래 생국수를 재료로 조각배와 탁자 등 사물들을 만드는 것으로 잘 알려졌다. 그런데 왜 빵인가.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잘 팔리지 않는 작품이다 보니 화랑들이 기피하기도 하고 오랜만에 개인전을 열게 됐다”면서 “국수 작업에 변화를 주고 싶던 차에 밀가루와 연계된 소재를 찾던 중 빵이 떠올랐다”고 설명했다.
“빵이라는 게 먹을거리지만 사람같이 살려면 너무 먹고 사는 것에 집착해서는 안돼요. 배를 채워주는 수단을 넘어 빵에게 한 번쯤 고맙게 생각하는 기회를 갖자는 겁니다.” 작가는 빵 작업을 통해 현대인들의 무분별한 소비성향에 대한 문제점을 환기시키겠다는 의도다. 작품은 달콤하고 맛있어 보이지만 사실은 산업용 재료인 폴리우레탄으로 만들었다.
진짜처럼 보이는 가짜 빵 조각으로 보는 이로 하여금 착시현상을 불러일으킨다. 심상용 미술평론가는 그의 작품에 대해 “조각이 빵이요, 빵은 곧 조각이 된다. 이는 양자 간에 경계를 설정하려 안간힘을 써온 지난 세기의 역사에 한 방 먹이기”라며 “로댕이나 부르델 이후 희미해졌던 조각과 실존의 변증적 교류가 새삼 중요하게 부상하는 것”이라고 평했다.
1990년 베니스비엔날레 이탈리아관 공간 일부를 빌려 기획전을 가져 주목받은 작가의 일관된 테마는 ‘메신저’ ‘커뮤니케이션’이었다. 그는 “세상과의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이 주제에 몰두했다”면서 “이번 빵 작업은 오래된 시간과의 소통, 주변 사람들과의 교류, 현실과 가상의 연계 등을 모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1962년 홍익대 조소과를 나온 이후 50년 가까이 고집스럽게 힘든 작업에 매달려온 그는 요즘 젊은 작가들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 “테크닉이나 기술적인 측면에서 아이디어는 발전했지만 진국을 보여주겠다는 집념은 부족한 것 같아요. 젊은이답게 모험이나 실험을 즐기는 것은 별로 없고 지나치게 유행이나 조류에 민감해요. 그렇지만 좀 더 원숙해지면 좋아지겠죠.”
이번 전시에는 가짜 빵 소파 주변에 진짜 국수를 흩어놓거나 세워놓은 작품도 선보인다. 전시가 끝나면 국수를 치우기 때문에 작품은 소멸된다. 이에 대해 그는 “작품의 실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미지를 영구히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형태와 이미지의 미학에 관심을 표명하는 작가는 이의 방편으로 빵과 국수의 서사를 유머러스하게 펼쳐내고 있다(02-720-5114).
글·사진=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